[경향신문 특별기고] 송민순 석좌교수
[경향신문 특별기고] 송민순 석좌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4.25 10: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을 움직일 지렛대가 필요하다

  한·미 정상은 아무리 자주 만나도 할 말이 넘치게 되어 있다. 북한의 핵 위협,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조짐, 중국으로부터 밀려오는 무게감 등으로 둘러싸인 한국은 특히 오늘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사정도 만만치는 않다.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에 군사·외교적 역량을 배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와 맞서야 하고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팽창을 감당해야 한다. 유라시아 대륙에 반미 성향의 단일 또는 연합 세력이 등장하는 것은 미국의 세계전략상 최악의 시나리오다.

  지금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동맹국들과 군사·외교적 기반을 다잡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를 다지고 1992년에 떠났던 필리핀 수빅 해군기지를 다시 사용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렇게 되면 2016년 완공될 평택기지에서 오키나와, 수빅을 거쳐 호주 다윈 기지까지 서태평양을 휘두르는 미국의 아시아동맹 그물이 완성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아시아 방문에서 이 같은 ‘아시아 재균형정책’의 구체적 모습을 만들고자 한다. 일본이 참여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체계에 한국을 참여시키는 것이 과제다. 지난 30여년 동안 약 100억달러를 매년 투입하고도 여전히 실전 배치가 요원한 이 사업의 연명을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재정적·군사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한·일 간 안보 협력이 이루어져야 미국의 구도가 짜이는 것이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쌀·육류·자동차 수출 시장 확대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불리는 미국 중심의 태평양 경제질서 수립도 우선 순위에 있다. 미국은 중국에 참여하고 싶으면 하라고 말은 하지만 양측 모두 내키지는 않는다. 안보 질서뿐 아니라 경제 질서도 태평양과 아시아 대륙을 양분시킬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이 같은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봉쇄’로 인식한다. 동아시아 대부분 국가들은 미·중 간의 대립 구도를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특히 지리적으로 중국의 중심과 가까운 한국이 가장 민감한 위치에 있다.

  과거는 물론 미래에도 한·미동맹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중 봉쇄의 최전방에 나설 수도 없다. 얼핏 박근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핵심적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 동북아 대립의 표면적 요인은 북한 핵 문제와 중·일 영토분쟁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선도적으로 풀어가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구도를 먼저 만든 뒤 한·미·일 안보 협력, 특히 미사일방어체계의 타당성을 가늠하는 것이 순서다. 그 반대 순서는 맞지 않다.

  중국과 북한은 6자회담 재개를 원하지만 재개만이 능사는 아니다. 예상 결과물에 대한 윤곽이 잡힐 때 열어야 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북한이 행동으로 보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만 한·미의 대북제재 완화가 뒤따를 것이라는 게 확실해져야만 중국도 북한의 행동 보장에 나설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이 보여준 과거 행동으로 인해 북한과의 대화가 미국 국내정치나 정서에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미국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이 결심한다면 동원할 수 있는 지렛대가 있을 것이다. 아르키메데스가 “나에게 충분한 지렛대와 받침만 준다면 지구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를 조합해야 한다.

  미국에는 북핵 문제가 그리 큰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활적인 요소다. 미국은 지금 국내적 저항과 동맹국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란과 핵협상을 하고 있다. 진전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동맹국 한국이 미국을 설득하면 백악관은 정치적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또 반대할 다른 나라도 없을 것이다. 미국을 움직여야 비로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시작될 수 있다. 미국이 움직였는데도 북한이 기어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강력한 대응 조치를 취하는 데 중국을 동참시킬 수 있다.

  어떤 지도자도 대내외 모든 문제에 집중할 수는 없다. 특히 강대국들과 문제 투성이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한국의 대통령은 에너지를 상황의 핵심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 글은 경향신문 2014년 4월 25일(금)자 30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