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3.21 09: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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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감성칼럼, 음식문맹자? 음식시민!

  ‘먹거리X파일’이란 좋은 방송이 있습니다. 저도 즐겨 시청하는 방송인데요, 어느 날부터 집밖에서 식사를 할 때 제가 ‘음식문맹자’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때 식도락가를 자처하던 저인데 제가 즐겨 먹고 권했던 음식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사람인가를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그 방송에서 새우젓을 취재했는데 중국산을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현장을 고발했습니다. 중국산 새우에 MSG, 사카린 등을 듬뿍 넣어 국산으로 둔갑시키고 그 새우젓이 제가 자주 찾는 돼지국밥식당에까지 팔려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방송 이후 저는 돼지국밥을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지 않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돼지국밥에 소금 대신 새우젓을 듬뿍 넣어 먹으며 MSG로부터 저를 보호한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새우젓이 두렵습니다.

  ‘먹거리X파일’ 이후 저는 제 자신이 음식에 대해 ‘문맹자’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고 믿었는데 그동안 세상의 밥상은 끊임없이 소비자를 속여 왔다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 절망했습니다. 버나드 쇼는 ‘음식에 대한 사랑만큼 진정한 사랑은 없다.’고 했는데, 바꿔 말하자면 음식에 대한 분노만큼 큰 분노도 없을 것 같습니다.

  같은 대학에 슬로푸드운동가인 김종덕 교수가 계신데 그분은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면 음식문맹자가 아니라 음식시민이 될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분은 음식의 중요성을 모르고, 음식의 상태를 모르고,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먹히는 사람을 ‘음식문맹자’라고 했습니다. 반면 음식을 소중히 여기고, 조리기술을 가지고 있고, 자기 주도적으로 음식을 먹는 사람은 ‘음식시민’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의 특강을 듣고부터 저와 자주 식사를 하는 사람 중에서 누가 음식문맹자인지 누가 음식시민인지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음식시민이 제 주위에 많다면 저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음식을 빨리 먹는 음식문맹자와의 식사가 상당히 힘이 듭니다. 신문기자 시절 저도 아주 급하게 밥을 먹었습니다. 뉴스와 마감시간과 싸우며 먹는 음식은 저 자신을 음식문맹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은현리에서 전업 시인으로 살면서 느릿느릿 편안하게 먹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먹다보니 하루 두 끼 식사만으로 배부르고 행복했습니다.

  다시 세상으로 나와 살면서 예전의 저를 보듯 후다닥 먹어 치우는 사람들과의 식사는 고통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런 식사 속도를 맞추다 자주 체하기도 했고 먹은 것을 다 토해내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슬로푸드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뿐만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속도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빨리 먹는다면 좋은 음식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음식시민이 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음식시민이 되기로 결심하고 적게 먹고 천천히 먹는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음식이 사람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하니 일거양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체불명, 공급불명 등의 ‘글로벌푸드’, 비만과 중독 등을 가져오는 ‘패스트푸드’와 ‘먹거리X파일’이 고발하는 음식들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천천히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음식을, 어떤 속도로 드시고 있습니까? 당신은 스스로 음식문맹자라 생각하십니까, 음식시민이라 생각하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밥상은 어머니의 밥상일 것입니다. 어머니만큼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내 주위에서, 내 일생에서 위대한 음식시민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밥상으로 돌아갑시다. 그것이 스스로를 살리는 길일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받은 밥상을 세상과 나누도록 합시다. 피가 되고 뼈가 되고 살이 되고 사람이 되는 밥상의 시대로 돌아갑시다. 맛있는 삶을 위해.

<위 글은 경상일보 2014년 3월 21일(금)자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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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석 2014-03-30 17:50:44
귀를 쫑긋 새우고 먹어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