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시론] 김근식 교수
[중앙일보 시론] 김근식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3.1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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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해 감금설과 '대북 소식통'

 

 

  언론의 주목을 끌던 최용해 감금설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장성택 사건 이후 이른바 ‘대북 소식통’의 정보 전달 역할이 눈에 띄게 늘었다. 북한 내부와 연결된 비공식 정보는 때로 매우 의미 있고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대북 소식통의 긍정적 역할보다는 부정적 폐해도 적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는 각종 설(說)이 경쟁적으로 유포되면서 객관적인 북한정세 평가에 장애가 되기도 하고, 남북관계에 불필요한 걸림돌이 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이는 이른바 ‘대북 소식통’이라는 이름으로 탈북자들이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일부 종편과 언론이 확인도 없이 경쟁적으로 무차별 확산시킴으로써 가능했다. 과연 탈북자들과 그들이 의존하는 북한 내 소식통의 정보는 믿을 만한 것인가.

  우선 언론에 등장해서 각종 주장을 내놓고 있는 탈북자 출신 패널들은 북을 떠나온 지 상당히 오래된 분들이다. 시시각각 벌어지는 북한 내의 정확한 정보를 짐작하고 알아내기엔 너무 오래 떠나 있었다. 필자도 고향을 떠나온 지 삼십 년이 되었고 당연히 고향 소식은 감감할 수밖에 없다. 고향의 정취만 아련히 남아있을 뿐 약속 장소를 정확히 찾아가기도 힘들 만큼 현재의 고향은 낯설 수밖에 없다. 북에 살았던 당시의 일상생활과 관련해서는 탈북자의 정보와 증언이 타당하지만 십수 년이 지난 지금의 북한에 대해, 그것도 핵 문제나 김정은 관련 정보나 군사도발 징후 등과 같은 정치군사적 고급 정보를 그들이 정확히 알고 있으리라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최용해 감금설처럼 북한의 은밀한 권력내부 정보는 탈북자와 북한 내부 소식통이 정확히 알기 어렵다. 정보가 넘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우리의 경우도 청와대나 고위 권력층의 내밀한 동향과 사건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수밖에 없고 정확한 팩트(사실)는 끝내 알려지지 않는 게 더 많다. 그런데 탈북자와 북한 내 소식통이 장성택과 최용해 등 권력 엘리트의 내부 동향과 갈등 등을 소상히 알 수 있으리라는 것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북에 살았으니까, 북한 내부 소식이니까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은 적어도 권력층 내부의 정보와 관련해서는 냉정을 찾아야 한다.

  그나마 북한 내부의 정보원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듣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도 대부분의 소식통은 평양이 아닌 북·중 국경지역 사람들이다. 휴대전화를 통해 탈북자가 각자의 정보망을 활용하는 방식이지만 여기에도 경쟁적인 과잉정보의 구조가 존재한다. 전달하는 정보가 밋밋할 경우 언론이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탓에 대북 소식통들은 더욱 선정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을 과장되게 여과 없이 만들어내는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탈북자도, 그들에게 소스를 제공하는 북한 내 소식통도 결국은 사실 확인보다는 세간의 관심과 언론의 조명을 받을 만한 과장 정보에 가까이 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는 셈이다.

  특히 북·중 국경지역의 소식은 기실은 북한 권부의 정확한 정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정보원과 탈북자가 과장되게 한국에 전달한 북한 관련 각종 설이 다시 한국 언론과 중국을 거쳐 북한 내부로 들어가 더 크게 확대되어 되돌아오는 이른바 ‘부메랑 효과’의 소문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결국 대북 소식통이 제공하는 북한 관련 정보들은 구체적인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믿을 수 없는 낭설이거나 과장 생산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거나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는다고 언제까지 안심할 일이 아니다. 이제라도 북한 관련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리고 진위를 구분하는 언론과 전문가의 엄정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위 글은 중앙일보 2014년 3월 12일(수)자 33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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