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1.17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의 겨울은 몇 도입니까?
   


   날씨가 많이 찹니다. 겨울은 소한(小寒)에서 대한(大寒)으로 가면서 바야흐로 맹추위의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런 추위를 두고 옛사람들은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린 시절 찬바람 속에서 뛰어놀다 목이 마르면 수북하게 쌓인 눈을 두 손 가득 퍼 먹던 일이나, 맑은 고드름을 따서 입 안 가득 넣고 우두둑우두둑 깨어 먹던 일이 생각납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이 빈한한 그 시절 겨울의 추위가 주던 ‘제 맛’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춥고 긴 겨울밤 안방에 놓인 화로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알밤을 구워먹고 고구마를 구워먹었던 기억을 가졌다면 당신은 참 행복했던 사람일 것입니다. 추억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기에 그 겨울의 맛이 소중했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추울수록 움츠려드는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삼중 보온내의’가 아니라 겨울다운 겨울의 제 맛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눈 덮인 산을 오르지 않으면서 칼바람 속에 씽씽 얼음을 지치지 않으면서 털모자와 두툼한 장갑에 아웃 도어를 입고 도심 속에서 어슬렁거리며 겨울을 나는 요즘 세태에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다’는 이 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난방이 잘 된 커피숍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창밖의 겨울을 내다보는 세태에 겨울은 훗날 어떤 계절로 남을지 궁금합니다.

  언제든지 콸콸 쏟아지는 아파트 온수에 길들여져 겨울을 나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몇 도의 온도를 가졌을까요? 아파트 족은 겨울에 대한 내한성을 가지고나 있을까요? 10년 전에 보았던 영화 ‘투모로우’ 같은 재난을 요즘 현실에 대입한다면, 우리가 사는 울산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물론 그런 일은 기우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가 겨울을 너무 따뜻하게 지내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빙벽장인 충북 영동 ‘빙벽’이 개장을 했다고 합니다. 빙벽의 문이 열리자마자 겨울 스포츠인 아이스클라이밍의 매력을 만끽하는 산악인들의 ‘파이팅’은 화면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습니다. 빙벽용 도끼인 ‘아이스바일’을 찍으며 빙벽을 거침없이 오르는 모습에서 겨울이라는 거대한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후끈거리는 뜨거운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렇다고 빙벽도전은 전문산악인이나 젊은 사람의 몫만은 아닙니다. 나이를 잊은 채 수직빙벽을 오르는 어르신들의 도전을 보며 평생 동안 겨울의 추운 제 맛에 강하게 도전해온 열정에 덩달아 몸이 뜨거워졌습니다.

  얼음이 꽝꽝 언 강이나 호수에서 얼음구멍을 내고 낚싯줄을 내리는 일도 얼음이 두툼하게 어는 혹한 뒤에 오는 겨울의 즐거움입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설산을 오르는 일도 겨울이 주는 선물입니다. 겨울에도 꽃은 핍니다. 겨울추위에 피는 눈꽃, 얼음꽃의 향연은 겨울과 동행하는 자만이 볼 수 있는 향기로운 꽃입니다.

  혹시 당신의 지나 친 염려가 당신은 물론, 당신의 자녀들도 아웃도어를 입고 도시의 양지바른 쪽에서 기웃거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요?

  아무리 아웃도어가 겨울의 일상 패션이 되어버렸다고 하지만 아웃도어를 입고 맨발로 아파트 실내를 어슬렁거리는 것은 겨울 ‘꼴불견’인건 분명합니다. 아웃도어의 정신은 도전과 자유입니다. 도전할 때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 시간입니다.

  겨울 추위가 주는 제 맛을 가르치기 좋은 때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가수 조용필은 노래했습니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서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고. 저도 이 추위에 눈 덮인 산을 오르는 표범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지금 당신의 겨울은 몇 도입니까?

<위 글은 경상일보 2014년 1월 17일(금)자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