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문호가 엮은 우화집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 마을에 원로 촌장이 살았는데 세상만사에 능통하고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어 마을 주민의 존경을 받았답니다. 하루는 한 어린아이가 촌장의 긴 턱수염에 대해 물었습니다. “촌장님 주무실 때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자나요, 이불 밖에 내 놓고 자나요?”
어린아이다운 질문에 촌장은 어떤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자는 것 같기도 하고, 이불 밖으로 내놓고 자는 것 같아서 아이에게 다음 날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하룻밤 자보고 답을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어린아이가 찾아갔을 때 촌장이 돌아가셨다는 답을 듣습니다. 밤새 수염의 위치에 대해 고민하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그런 우화입니다. 이 우화가 가르치는 답이 무엇인지 당신도 잘 알겠지만, 저도 가끔 잊고 있었던 질문에 아무 답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대학가는 ‘안녕들 하십니까?’를 묻는 질문으로 뜨겁습니다. 고려대학교 한 대학생의 질문에 기말고사 후면 늘 한산해지던 대학가가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으로 겨울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후끈거리고 있습니다.
처음에 한 대학생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철도민영화에 따른 대량해고사태,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 고압 송전선 설치 반대로 인한 밀양 주민 자살 등 이러한 세상일에 무관심하며 학점과 스펙과 취업이 목적인 동료 청년들에게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정문일침(頂門一鍼)을 놓듯 아프게 물었습니다.
질문도 뜨거웠지만 돌아온 답은 더 뜨거웠습니다. 전국의 젊은 청춘들은 한결같이 ‘안녕하지 못한데 안녕한 척해서 부끄럽다’로 자성하는 답을 했고, 대학교수와 가정주부와 언론인, 심지어 고교생까지 그 질문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방송을 통해 만들어지는 개그풍의 유행어가 아닌, 한 대학생의 자성적인 질문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유행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급기야 이 열풍으로 행동하는 시민들이 모여 규탄 행진을 하고 촛불 집회를 가지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답이 정국을 달굴 것 같습니다. 유행어란 말 그대로 ‘비교적 짧은 시기에 걸쳐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라 유행이 지나면 사라지겠지만 오랫동안 ‘안녕들 하십니까?’로 묻는 아픈 질문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어떠할지도 깊이 고민해야할 것 같습니다.
청년들의 이러한 열풍에 우려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열풍에서 긍정의 힘을 봅니다. 조국에 분노가 없는 청년은 결코 애국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청년의 질문이 저를 흔들고 있습니다. 러시아 우화 속 그 어린아이의 질문처럼 안녕한 척 무관심하게 살아온 저를 화들짝 놀라게 하고 반성하게 합니다.
옛말에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죄라고 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스스로 진정 안녕한지를 묻고, 주변에서 큰 불편을 겪으며 안녕치 못한 이웃에 대한 사랑과 실천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요즘 뜻을 함께 하는 분들과 매달 셋째 금요일 중구 중앙길 171에 자리한 ‘갤러리201’에서 새로운 형태의 강연콘서트인 ‘TEDx201’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행사에 23살의 킴스트랩이란 젊은 시계수리공을 초대했습니다. 섭외를 위해 만나 자리에서 저는 그 청년이 가진 질문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사람은 시계를 만들었고 시계는 시간을 만듭니다. 무형의 시간을 시계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1초를 만들기 위해 시계 속에는 수천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부품들이 약속처럼 움직여서 1초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 청년은 1초가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지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당신의 시간은 몇 시입니까?’라고 물었는데 저는 제 인생의 시간을 알지 못해 아무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청년의 질문을 당신에게 똑 같이 합니다. 당신의 시간은 지금 몇 시입니까?
당신의 시간은 몇 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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