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 교수, 중앙일보에 시론 게재
김근식 교수, 중앙일보에 시론 게재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11.1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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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부부 닮은 남북관계를

 

 

   남북관계 정상화가 여의치 않아 보인다. 개성공단 재가동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되면서 남북은 서로 갈등과 무관심으로 대하고 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남북관계에 이젠 적잖은 사람들이 염증을 낸다.

 남북관계는 왜 이리 어렵고 복잡한 걸까. 왜 뜻대로 잘 안 되는 걸까.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면 남북관계라는 것이 본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려운 게 정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선의를 가지고 화해로 일관한 남북관계도 결국은 성공하기 어려웠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설렘과 애틋함으로 남북관계를 다뤘지만 남북은 번번이 마음의 문을 제대로 열지 못했다. 민족 화해에 입각한 우리의 선의는 북에 의해 선의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이명박정부는 전면 압박으로 일관했지만 북을 굴복시키지도 변화시키지도 못한 채 한반도의 긴장만 고조시켰다.

 결국 지난 15년의 남북관계를 반추해보면 마치 신혼기를 거쳐 파경기를 지나온 부부와 유사하다. 처음 신혼기에 설렘을 안고 한없는 애정을 보냈지만 상호 신뢰는 성공하지 못했고 급기야 애정이 증오로 바뀌면서 파경기에 이르러 극단 대결로 지새웠지만 이 역시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현실의 남북관계는 지나친 기대와 설렘도, 과도한 적대와 분노도 성공하지 못함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남북관계는 신혼기도 파경기도 아닌 편안하고 안정된 중년부부와 같이 담담한 것이어야 한다. 서로 지나친 애정과 흥분으로 대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상대를 분노와 적개심으로 대해서도 안 될 것이다. “사랑한다”고 요란을 떨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워 죽겠다”고 고함도 지르지 않는 담담하고 차분하고 편안한 중년의 남북관계가 오히려 지속가능하고 정상적이지 않을까.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북이 우리 기준대로 변화해야 신뢰가 시작되는 구조라면 이 역시 지나친 애정이 집착으로 변해서 미움으로 종결될 우려를 떨쳐내기 어렵다.

 남북관계의 중년부부론은 필요에 따라 서로 협력하면서도 호들갑을 떨지 않고, 담담하게 상대를 대하면서도 결코 미워하지는 않는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의미한다. 좋다고 밉다고 떠들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이해하는 중년의 남북관계야말로 조용하지만 편안하고 오래가는 정상적인 남북관계가 될 것이다.

  중년부부 같은 남북관계가 백년해로의 노년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첫째, 어떤 경우에도 가정 평화를 깨뜨리는 폭력은 금지돼야 한다. 한반도에 군사적 충돌이나 도발은 결코 용납돼선 안 된다. 남북관계 중년부부론이 평화체제를 전제로 하는 이유다.

 둘째,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남편과 부인이 서로 상대방의 생각과 생활을 인정하지 않으면 중년의 편안함은 존재할 수 없다. 상대방에게 자기 방식만을 강요하는 순간 가정의 평화는 깨지게 마련이다. 중년의 남북관계가 체제 인정과 상호 존중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중년부부는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의 신뢰의 끈을 유지해야 한다. 아무리 대화가 없어도 부부라는 정체성만큼은 훼손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가 정체되거나 교착될 때도 최소한의 신뢰의 끈으로서 대북 인도적 지원과 대화 지속이 필요한 이유다. 중년의 남북관계는 지나친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같이 할 게 있으면 협력하고 대화할 게 있으면 마주 앉고 설득할 게 있으면 협상하고 잘 안 되면 돌아섰다가 다시 만나고 그러다 보면 더디지만 조금씩 남북관계가 나아지지 않을까.

<위 글은 중앙일보 2013년 11월 14일(목) 33면에서 발췌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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