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촉석루] 김경복 교수
[경남신문 촉석루] 김경복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11.08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통이 소음이다

   컴퓨터 이메일을 열어보면 스팸 메시지가 대다수를 차지해 일일이 클릭해 지우기가 바쁘다. 지우는 것이 하도 많다 보니 정작 내가 열어보아야 할 메시지도 지울 때가 있어 짜증이 난다. 도대체 내 이메일 주소를 이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보낸단 말인가.

   더한 것은 수시로 페이스북 사이트에서 올라오는 친구 요청 알림.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친구의 친구로 엮여서 내 시선 안에 수시로 출몰한다. 문자메시지가 공해라는 생각이 확 든다.

   휴대폰 사정은 어떠한가? 마찬가지다. 우선 음성 전화에 수시로 걸려오는 땅 소개, 신문이나 잡지 구독 요청, 보험 상품이나 저축성 예금 소개, 동문 모임 안내 등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데에 실질적 필요성이 없는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폰에 뜨는 문자메시지는 더욱 가관이다. 수시로 알림소리를 내며 터지는 대리운전, 금융상품 안내, 휴대폰 사용 내역과 새로운 버전 소개, 카드 사용 내역 등 정작 열어보고 싶지 않은 메시지들이 줄줄 창을 타고 흘러내린다.

   카톡 창도 마찬가지다. 내가 개인적으로 채팅한 사람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단체 카톡방의 경우 수시로 알림음을 내면서 열리는 공간은 정말 쓰잘데없는 말짓거리와 이모티콘으로 부산스럽기 짝이 없다.

   나와 직접 관련 없는 소식들이 소리를 내고 불을 번쩍이면서 들어주세요, 보아주세요, 읽어주세요 하며 온통 내 몸의 감각을 붙잡는다. 감각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정보의 가치가 혼란스럽게 되고 판단이 흐릿해진다. 이때는 소통이 소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손끝의 까닥거림이나 흐릿한 눈길로 잠시 스쳐보는 스캔일 뿐이다. 소통의 내용들이 감각의 차원에서만 머물 뿐 사유의 차원으로 넘어오지 않는 것이다.

   이런 소통은 소음이다. 소음은 소통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의식성, 내면성을 잠들어버리게 함으로써 건강한 소통을 방해한다. 경제학 이론에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듯이 소비자본주의의 필요 이상의 정보들은 진정한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소통의 본질을 심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소음이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점에서, 소통이 소음을 넘어 공해 그 자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는 점이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3년 11월 8일(금)자 22면에서 발췌한 기사 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