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8.1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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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울산'을 꿈꾸며
   

 









 

 

 

 

 

 

 


  ‘슬로시티’란 말이 유명해지면서 당신도 한 번쯤은 슬로시티로 힐링 여행을 다녀왔을 것입니다. 지난 세기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달팽이가 상징인 슬로시티는 이제 우리에게 신뢰가 깊은 친숙한 이름입니다.

  또 당신은 ‘울산에 슬로시티 인정을 받을 곳이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을 것입니다. 산업수도를 자처하는 울산에, 속도의 상징인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도시인 울산에 슬로시티가 당찮을 것이란 결론 내렸을 것입니다.

  최근 느리게 사는 삶을 주도하는 국제슬로시티연맹은 5년마다 열리는 재인증 심사에서 지난 2007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슬로시티에 가입한 장흥군 유치면을 탈락시켰고, 신안군 증도면은 유보 시켰습니다.

  탈락이나 유보 이유는 과도하게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슬로시티를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여 느리게 살자는 슬로시티의 본질을 훼손시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슬로시티를 만드는 잣대가 실로 엄격한 것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발표 직전에 저는 신안 증도 여행을 다녀왔었습니다. 증도에서 한적한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다는 기분 좋은 느낌을 받고 왔는데, 재인증 심사에서 유보 판정을 받는 것에 저 역시 슬로시티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

  저도 당신처럼 울산에 슬로시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2007년 한국의 여러 지역이 슬로시티로 인정을 받았을 때 제가 사는 울주군 웅촌면이 슬로시티로 가능할까에 대해 고민해봤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너무 쉽게 났습니다. 그건 ‘절대 불가’였습니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슬로시티로 인장받기 위해 제시하고 있는 환경정책, 기반시설정책, 도시의 품질을 높이는 기술과 설비, 지역전통산업과 슬로푸드, 방문객 환대 능력, 주민들의 의식수준 등의 심사분야에서 어느 한 가지도 쉽게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울산에서 슬로시티의 꿈이 오히려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럼 현재의 울주군은 슬로시티를 꿈꿀 수 있을까요? 울산광역시의 허파와 같은 구실을 하고 있는 울주군은 많이 변했습니다. 몇 년 사이 슬로시티로 가는 길을 막는 장애가 더 많아졌습니다.

  울산발전연구원의 ‘2030 울주군 중장기발전계획’에 따르면 2005년 주민등록상 인구 17만4354명이 2010년엔 20만1000명으로 15.3%나 늘어났습니다. 그 인구 속에 외국인 수도 2282명에서 5088명으로 무려 123.0%가 늘어났습니다.

  외국인 수의 증가는 공업지역이 증가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울주군의 인구1인당 공업지역(㎡)은 2010년 현재 163.08㎡입니다. 푸른 산을 깎아 공업지역을 늘였으나 울주군의 재정자립도는 2005년에 비해 2010년 현재 -5.8%입니다.

  울산발전연구원이 비교 조사한 지역의 같은 기간 재정자립도가 부산 기장군 2.6%, 대구 달성군 25.8%, 인천 강화군 21.4% 상승한 것과 비교해보면 울주군은 녹지를 투자해 공업지역을 확대해갔지만 살림살이가 좋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대안의 하나로 울주군에 슬로시티를 권합니다. 환경이 예전부터 더 어려워졌기에 슬로시티는 ‘푸른 울주’로 가는 출구전략이 되지 않을까요.

  속도가 중시되는 사회에서 슬로시티가 비현실적인지 모릅니다. 1999년 국제슬로시티운동이 출범된 이래 2013년 6월 현재 세계 27개국 174개 도시로 슬로시티가 확대되었으며 우리나라도 10곳의 슬로시티가 가입되어 있습니다. 또한 많은 자치단체들이 슬로시티를 향해 뛰고 있습니다.

  ‘인구 5만 명 이하 지역’이 슬로시티 가입기준인데 2010년 전주한옥마을이 대도시로선 세계 최초로, 한국의 전통문화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어 슬로시티로 인정받았습니다. 그건 지금의 울주군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울주군은 느리게 변해야 삽니다. 울주군에 슬로시티가 들어선다면 ‘태화강의 기적’에 이은 ‘산업도시 울산의 진정한 기적’이 될 것입니다. 부디 책상 위에서 ‘안 된다’고 하지 말고,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행정을 기대해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 이 기사는 2013년 8월 16일자 경상일보에서 발췌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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