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시론] 김근식 교수
[경향신문 시론] 김근식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8.16 0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진감래의 남북관계

   하여튼 잘됐다. 지루한 신경전 끝에 만시지탄은 있지만 결말이 좋으니 잘된 일이다. 일부에서는 더 밀어붙여야 했다는 질타의 목소리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남북이 합의가능한 최적의 지점을 서로 현명하게 도출해냈다는 평가가 맞다. 끝까지 쟁점이었던 재발방지 문제에서 북측은 남과 북이라는 동시주체를 관철해 형식을 얻어냈고 남측은 재발방지와 관련해서 북이 지켜야 할 사항만을 열거함으로써 실질적 내용을 관철했다. 형식과 내용의 절묘한 교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개성공단 사태의 발단은 북이 대남 긴장고조의 카드로 시작했다가 남북의 상호 상승적인 대결이 격화되면서 공단폐쇄까지 이른 것이다. 상호적인 관계 악화의 과정이었지만 굳이 책임소재의 과다를 따지자면 남측은 말로 상황을 악화시켰고 북측은 공단폐쇄로 가는 결정적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북이 좀 더 양보를 하는 게 맞는 일이었다. 접촉사고로 팽팽히 시비를 가리다가 손찌검을 날리는 쪽이 결국은 나쁜 사람이 되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때문에 합의 도출 과정에서 북은 자신의 입장을 조금씩 양보하면서 유연하게 남측 요구에 접근해왔고 남은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북의 완전굴복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고 최적의 시점에서 유연성을 발휘했다. 개성공단 합의문은 남북의 합작품인 셈이다.

   합의 도출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북의 한반도 정세관리 의도와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 개시 의지가 각각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북은 이미 3차 핵실험과 병진노선 천명을 통해 미국과 중국에 핵보유 의지를 강력하게 선언해놓은 만큼 이제 경제건설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대중 관계와 대미 협상을 대비한 한반도 정세관리 차원에서 남북관계의 일정한 유지가 필요하다. 북이 개성공단 정상화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남북관계 진전을 요구한 이유다. 박근혜 정부도 임기 초반 북과의 기싸움에서 밀릴 수 없었기에 재발방지와 발전적 정상화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밀어붙였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될 수 있는 남북관계의 시작은 이뤄내야 한다. 북한 붕괴에 입각한 대북 완전굴복 요구에 올인하다가 결국 남북관계 자체를 파탄시킨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근혜 정부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남북관계 진전을 통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작동 의지를 아직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체제와 박근혜 정부가 지루한 기싸움 끝에 관계 개선의 첫발을 내디뎠지만 앞으로 행보가 마냥 순탄할 수만은 없다. 시작만큼 이후도 만만치 않다. 합의 사항 이행 과정에서 여전히 남북의 이견과 신경전이 지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의 구성과 가동에서부터 3통 문제 해결 그리고 피해보상 등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갈등요인을 잘 관리해내는 게 필요하다. 노무·세무·임금 등의 국제화가 입주기업의 기존 특혜를 줄여나가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에도 대비해야 한다. 개성공단 정상화를 시작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등 향후 전반적인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 남북은 이번 합의 도출의 경험을 토대로 지나친 고집과 과도한 요구는 되도록 줄여나가고 합의가능한 유연함과 양보를 늘려나가는 노력에 익숙해야 한다.

   이번 합의 도출 과정이 시사하는 중요한 교훈은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남북대화가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막상 합의가 도출되지 않고 성과가 없더라도 남북은 7번이나 실무회담을 이어왔고 누구도 회담 결렬을 선언하고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처럼 한번의 회담으로 남북대화가 끝장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남북은 끈질기게 마주앉아 결국은 합의를 도출해내는 고진감래의 남북관계에 익숙해야 한다.

<위 글은 경향신문 2013년 8월 16일(금)자 27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