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경남시론] 정일근 교수
[경남신문 경남시론] 정일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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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05 13: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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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절필과 생게 사부르

   ‘생게 사부르(syngue sabour)’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페르시아 말로, ‘인내의 돌’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게 사부르는 아프가니스탄 신화에서 마법을 가진 돌로 등장합니다. 고뇌하는 사람들이 호소하는 고통의 비밀들을, 돌이 인내하며 모두 들어주는 것입니다.

   생게 사부르는 오랫동안 고통의 말을 묵묵히 들어줍니다. 그러나 그 돌은 고통이 한계를 넘어서면 딱!, 하고 깨어져 버린다고 합니다. 그 돌이 깨어지면 비밀을 털어놓은 그 사람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준다고 합니다.

   더 이상 고통의 말을 들어줄 대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생게 사부르는 사람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마법의 돌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신라 제48대 경문왕의 일입니다. 경문왕은 귀가 당나귀 귀처럼 아주 컸다고 합니다. 그 비밀은 왕의 관(冠)을 만드는 복두쟁이만 알고 있었습니다.

   비밀을 가진 복두쟁이는 말하지 못하는 고통으로 평생을 살다 죽을 때가 돼서야 도림사 대숲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그 후에 바람이 불면 대나무가 소리를 내어 복두쟁이의 비밀을 세상에 전했다고 합니다.

   검찰이 ‘우리 시대 좋은 시인’인 안도현 시인을 기소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안중근의 유묵을 소장하거나 유묵 도난에 관여됐다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에 17차례 올린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안 시인은 검찰이 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하자 ‘절필’을 선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고 발표하지도 않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그는 절필 선언 이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0년 넘게 시를 써 왔고 10권의 시집을 냈지만, 현실을 타개해 나갈 능력이 없는 시, 나 하나도 감동시키지 못하는 시를 오래 붙들고 앉아 있는 것이 괴롭다’고 절필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 ‘불의가 횡행하는 참담한 시절에는 쓰지 않는 행위도 현실에 참여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시를 쓰지 않고 발표하지도 않을 뿐, 나는 오래 시를 바라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의 ‘절필 선언’은 개인의 일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검찰의 기소에 대해 문인 217명이 성명서를 내고 ‘검찰이 안 시인의 트위터 글을 문제 삼아 무리한 기소를 하고 말았다’면서 ‘지난 정권부터 본격화된 국가 공권력의 기소권 남용이 지속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시인의 절필 선언 이후 많은 분들이 제게 시인에게 절필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시인에게 시는 ‘생게 사부르’며 ‘도림사 대숲’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인은 시를 통해 자신과 이웃의 고통, 시대와 역사의 고통을 말해 왔는데, 안도현 시인은 절필로 자신의 고통과 당당하게 마주섰다고 말했습니다. 시인에게 절필은 용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큰 의미로 보면 ‘생게 사부르’나 ‘도림사 대숲’은 고통을 털어 놓는 대상이란 점에서 같은 뜻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게 사부르는 고통을 탈출하는 해방구이지만 도림사 대숲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고통을 털어 놓는 사람은 고통에서 해방되지만, 비밀을 고통스럽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참기 힘든 고통을 가지고 있다면 그 해결책으로 생게 사부르를 택하겠습니까, 도림사 대숲을 찾겠습니까?

   안도현 시인의 오랜 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그가 하루빨리 절필에서 벗어나 다시 펜을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3년 8월 5일(월)자 23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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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석 2013-08-08 09:51:15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시인이 경남대학교에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복어 닮은 얼굴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지만...

농담입니다. 정일근교수님의 제자의 이런 익살스런 농담도 잘 받아주시는 따뜻한 분입니다
정일근 교수님을 존경하고 안도현시인님을 존경합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