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정일근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정일근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7.1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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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보다 더 빠른 고래관광 콘텐츠가 필요하다

  살아있는 고래를 만나는 순간의 감동
  고래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물거품 돼
  발빠른 콘텐츠로 ‘고래바다’ 명맥을

   당신에게도 잊히지 않는 한 순간의 명징한 장면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장면이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변화시켰던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흔히 운명이라고 하는 순간들이 역사를 만들고 신화를 만들어낸다고 저는 믿습니다.

   울산바다에서 처음 고래를 만났던 날의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제 생의 중요한 한 장면입니다. 울산시가 ‘고래목측조사’를 시작하지 않았고, 남구가 ‘고래바다여행선’을 운항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환경연합운동 바다위원회 회원들과 북구 정자항에서 꽤 빠른 속력을 내는 배를 타고 고래탐사를 나갔다가 오래 나가지 않아 밍크고래를 만났습니다. 거대한 고래가 바다 속에서 불쑥 올라왔다 다시 숨어버리는 것을 배가 빨라 물속의 고래를 찾아가면서 숨을 쉬기 위해 다시 솟구치는 고래와 여러 차례 숨 가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건 마치 반구대암각화 속에 새겨진 고래가 바다로 뛰어나온 것 같았습니다. 평면의 고래가 3D입체로 되살아나는 환상 같았습니다. 죽은 고래를 삶아내는 퀴퀴한 내음의 고래 고기가 아닌 생생하게 살아있는 고래, 송창식이 ‘고래사냥’에서 열창하던 바로 그 ‘신화’였습니다.

   그때부터 고래에 대한 제 생각이 변했습니다. 소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코팅’ 선생이 자신의 학생들에게, 독자들에게 외치던 ‘carpe diem!’(현재를 잡아라)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죽은 고래의 시대를 하루 빨리 청산하고, 살아 있는 고래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제 안의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울산바다에서 수많은 고래들을 만났습니다. 여러 번 만나면 그 감동이 엷어질 것인데, 고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환호하게 되는, 스스로 바다가 되는 것 같은 황홀한 ‘힐링의 현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래는 예로부터 울산바다의 ‘진객’이었습니다. 소중한 선사시대 문화재인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고래들이 그 사실을 말해줍니다. 근대포경 100년의 역사를 가진 장생포도 고래 따라 흥망이 바뀌었던 고래의 ‘랜드마크’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유망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는 ‘고래축제’도,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바다여행선’으로 이어지는 장생포고래관광특구의 콘텐츠도 진객 고래가 출현하는 빈도에 따라 관람자가 몰리거나 빠져나가 버립니다.

   고래도시 울산을 만들어 가는 선봉장인 남구청장은 조선, 자동차, 석유 등 울산의 주요산업이 기력이 쇠진해지면 고래가 울산을 살리는 관광산업이 될 것이라 어느 자리든 강조하지만, 그 바람 또한 고래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제는 더 빠른 콘텐츠로 고래를 찾아내고 만나게 해야 합니다.

   올해 ‘고래축제 평가서’를 읽어보면 ‘태화강에서 선사시대 고래잡이를 재연하는 행사와 장생포 앞바다에서 고래를 구경하는 고래바다여행선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축제장 평균 체류시간은 3시간 53분으로 조사됐는데 외지 관광객은 장생포 행사장에서, 지역주민은 태화강 행사장에서 더 오래 체류했다고 합니다. 이 통계는 여전히 고래축제를 찾는 외지 관광객은 울산으로 살아있는 고래를 만나러 온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고래바다’로까지 명명한 울산바다에 고래가 회유해오지 않는다면 오래 시간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 고래도시 울산의 꿈은 한낱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가끔 출몰하는 돌고래 떼는 시속 20km이상으로 거친 바다를 헤쳐 가는데, 돌고래보다 느린 속도로 고래를 찾아다니는 고래바다여행선의 현실이 울산 고래관광의 현실입니다. 낡고 식상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고래를 만나는 감동! 그 감동을 울산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블록버스터 급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속도의 지혜를 다시 모아야할 때입니다.

<위 글은 경상일보2013년 7월 19일(금)자 19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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