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진단] 창원대 뒷산 명칭 뭐가 맞나 (3·끝)
[경남신문 진단] 창원대 뒷산 명칭 뭐가 맞나 (3·끝)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6.27 15: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병산·봉림산은 다른 산" 의견 다수

  창원부읍지·여지도서 등에 봉림산-전단산 분명히 구분

  정병산의 전신은 전단산 봉림사 터 있는 곳이 봉림산

   창원대 뒷산의 명칭에 대해 본지에 의견을 제시한 시민과 전문가 의견은 “정병산과 봉림산은 다른 산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입장을 유보한 다른 시민들은 “더 이상 혼란이 없도록 논쟁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주문을 빠뜨리지 않았다.

   본지는 지난 11일과 13일 두 차례에 걸쳐 ‘창원대 뒷산 명칭 뭐가 맞나’는 제목으로 박동백 창원문화원장과 김정대 경남대 교수의 주장을 실었다. 이 기사는 본지 홈페이지에 별도 코너를 마련해 시민 의견을 수렴했다. 27일 오전 현재까지 총 3000여 회가 조회됐다.

   기자 이메일과 전화로 의견을 분명하게 밝힌 사례와 전문연구자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창원시민 김일근 씨는 “봉림산의 기준을 봉림사지로 본다면 창원도호부에서 지이포를 거쳐 도보로 가면 15리 정도가 되는데, 박 원장은 굳이 왜 길상사 인근 산을 15리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재의 용지호수 둘레는 1.2㎞ 정도로 1보를 0.7m로 본다면 옛 문헌의 기록과 일치한다. 이전 못의 깊이는 반공회관 쪽에 수문이 있었는데, 수심은 두 길 이상(3m)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배한성 경남개발공사 사장(전 창원시장)은 “시정계장 시절에 정병산을 봉림산으로 개명하는 안을 창원시지명위원회를 통해 상급기관에 올렸는데, 기각됐다”며 “더 이상 혼란이 없도록 논쟁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옛길을 조사하고 있는 최헌섭 두류연구원장은 “‘여지도서’, ‘해동지도’, ‘조선후기지방도’, ‘대동여지도’ 등 조선시대의 지도에 봉림사가 속해 있는 소목고개 서쪽의 작은 구릉(봉림산)과 그 동쪽의 전단산(정병산)은 분명하게 구분해 그려져 있다”며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창원대 사학과 구산우 교수는 “결론적으로 박 원장의 주장이 안 맞다”며 “창원부읍지나 여지도서를 보면 전단산과 봉림산은 구분된다. 창원대 뒷산인 정병산의 전신은 전단산이고, 봉림사 절터가 있는 곳이 봉림산이다”고 못박았다. 그는 “정병산의 출현 시기는 확인이 안 되는데, 전단산이 언제 정병산으로 바뀌었는지는 연구를 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아대 사학과 김광철 교수는 “지금의 정병산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는 논증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고지리서를 볼 때 전단산을 지금의 정병산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봉림산과 전단산이 같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병산이 봉림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역 지명을 연구한 창원대 국문학과 민긍기 교수는 “봉림산은 전단산에서 갈라져 나간 가지에 불과하다”고 분명히 했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3년 6월 27일(목)자 6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