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감성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감성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6.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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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도심 속 나대지에 하얗게 핀 ‘개망초’
인위적 꽃밭보다 절로 자란 작은꽃 정감
소박함이 인간적이고 발전적인 것

   여여 하신지요? 오랜 만에 경상일보 지면를 통해 인사드립니다. 대학으로 일상의 중심을 옮긴 뒤 두 도시를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를 가르치는 일과 시를 쓰는 일 사이 종종걸음 치다 문득 달력을 보면 시간이란 것, 보이지는 않으나 여흘여흘 흘러가는 깊은 강물 같습니다.

   제가 시를 읽고 쓰는 은현리에는 제가 무심하든 말든, 기다리든 말든 꽃이 피고 집니다. 때죽나무, 산딸나무, 층층나무 흰 꽃이 지고 자귀와 배롱나무가 꽃 피울 준비로 바쁩니다. 색색의 접시꽃이 한창이고 고추나무, 가지나무에는 고추꽃, 가지꽃이 일고 고추와 가지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울산 도심에도 풀꽃이 핍니다. 어쩌다 시내에 나가보면 버려진 것 같은 나대지에 어김없이 망초, 개망초 흰 꽃이 가득합니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망초는 일제가 식민지 침탈을 위해 경인선, 경부선 철도를 깔 때 철도침목에 묻어와 전국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일제에서 들어와 망할 ‘亡’(망)자가 들어간 슬픈 풀이 되었습니다. 개망초는 ‘왜풀’이라고도 부릅니다.

   식물의 이름에 붙은 ‘개’는 동물 개[犬]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소개합니다.

   혹시 어린 시절 소꿉장난을 할 때 계란꽃이라 부르던 개망초를 당신은 기억하시는지요? 개망초의 ‘개’는 표준국어대사전이 뜻하는 접두사 소개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망초에 비해 더 예쁜 꽃이기 때문입니다. 152만 명이나 다녀갔다는 ‘울산대공원 장미축제’나 60만 명이나 다녀갔다는 ‘태화강 꽃축제’가 좋았다고 하지만 저는 저절로 피어난 그 작은 꽃에 애정이 더 갑니다.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어 눈살이 찌푸려지는 나대지에 누가 심은 것도 아니고,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활짝 피는 귀화식물 개망초가 저는 반갑습니다. 사람에 귀천이 없다면 꽃에 귀천이 있겠습니까. 혹 개망초를 보신다면 당신, 걸음을 멈추고 그 작은 꽃과 눈맞춰주시길 권합니다. 저는 그런 애정이 분명 꽃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저는 작은 꽃이 아름답습니다. 요란한 꽃보다 조용한 꽃을 좋아합니다.

   울산 건축물이 요란한 꽃처럼 대형화 고층화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입니다. 가끔 그 끝을 올려다 보다 어지러워집니다. 대형식당에서 요란한 소음에 시달리는 식사 역시 힘든 고역입니다. 넓어지고 높아진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작고 소박한 건물이 아름답고 편안합니다. 얼마 전 중구 문화의 거리에 오픈한 모 갤러리에서 지인의 사진전이 있어 찾아갔다 오랜 만에 아담하고 소박한 전시장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왜 요란한 꽃잔치에 환호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왜 높고 넓은 건물에 감탄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은현리에서 요즘 제가 자주 찾는 꽃은 개별꽃입니다. 겨우 10cm 정도 높이로 크는 개별꽃은 햇볕 좋은 곳이면 반짝반짝 별처럼 피어있습니다.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어야 하지만 꽃이 주는 아름다움은 마음 깊숙이까지 들어와 반짝입니다.

   저는 요즘 은현리에 오두막 같은 집필실을 새로 지을 꿈을 꾸며 에스키스를 그리고 있습니다. 5평 정도의 집필실과 그 평수 정도의 창고, 작은 텃밭, 나무 몇 그루면 아주 행복할 것입니다.

  그 정도의 꿈을 꾸지만 <월든>을 지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4평정도인 호숫가 작은 오두막보다,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1887~1965)가 부부를 위해 지은 별장 4평보다는 넓은 것이어서 욕심이 많아 고민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작은 것으로 회귀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거대한 공룡을 꿈꾸는 정책은 공룡이 멸종되었듯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거대한 울산시는 작은 것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변화’며 ‘발전’이라는 계획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가졌으리라 바라며.

<위 글은 경상일보 2013년 6월 21일(금)자 19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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