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인터뷰] 정일근 교수
[경남신문 인터뷰] 정일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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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4.2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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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는 슬픔의 유정란에서 탄생”

정일근 시인 11번째 시집 ‘방!’ 출간
고래보호·지리산 등 소재 81편 실어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다.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을 ‘쉬인’이라고 장정일은 표현했다. 시를 쓰지 않으면 시인이 아니다. ”

   도내 문단의 대표 격인 정일근 시인이 ‘방!’(서정시학)이라는 제목의 11번째 시집을 냈다. 지난 198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올해로 시력(詩歷) 서른 해가 되는 정 시인은 시집을 포함해 시조집 1권, 그림동화 3권, 시선집 4권, 사진 산문집 1권 등 모두 20권의 책을 냈다. 시집만으로 볼 때 2년7개월마다 1권의 시집을 낸 셈이다.

   오랜 기간 이렇게 열심히 시를 쓸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

   “고통의 순간순간 시가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을까. 세 번이나 죽을 고비가 왔을 때 시는 약이기도 했다. 시는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편안했다면 이렇게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생이 고난이었고 절실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잃은 정 시인은 유년시절의 아픈 상처에 대해 “내 시는 ‘슬픔의 유정란’에서 탄생했다”며 “눈물 많은 아이였고 그래서 시를 많이 읽었다. 슬픔을 통해 시를 배웠다”고 고백했다.

   지금까지 발표한 시는 1000여 편이고, 발표하지 않은 시가 1000편이며 바로 2권의 시집을 낼 분량이 있다고 했다. “시인이니까, 시를 쓰는 사람이니까,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책무를 다했다. 그렇지만 허투루 썼다는 말은 듣지 않았다. 30년 근속하는 마음으로….”

   시집 ‘방!’은 지금까지 낸 시집 중 제목으로서도 가장 짧고, 시도 대부분 10행 이내로 짧다. 시가 길고 난해해 독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데 대한 반성과 함께 시가 잃어버린 음악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시집에는 그가 몸이 아픈 뒤 치유를 위해 옮겨 간 울주군 은현리 시골마을에 있는 집필실 주변 이야기와 지난 2000년부터 고래 보호 운동에 뛰어들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고래와 바다에 대한 이야기, 최근 자주 찾는 지리산과 여행에서 얻은 사유에 관한 이야기 등 모두 81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은현리는 나를 고치고 정신도 치유한 자연학교이다. 고래 보호 선봉장이 된 건 학살되는 고래를 생명의 아이콘으로 되살려 보자는 취지다. 여행을 하면 생각을 하나 얻게 되고, 그걸 잘 발효시켜 간을 봐 맛있겠다 싶으면 내놓는다.”

   “달팽이와 함께 느릿느릿 사는 사람의 마을에/ 개별꽃 곁에 키 작은 서점을 내고 싶다/ 낡은 시집 몇 권이 전부인 백양나무 책장에서/ 당나귀가 어쩌다 시 한 편 읽고 가든 말든/ 염소가 시 한 편 찢어서 먹고 가든 말든.(시 ‘치타슬로’ 전문)

   그는 ‘시인의 말’에서 “선문에서 ‘방’이란 몽둥이란 뜻이다. 내게 방!이란 나를 때리는 시의 몽둥이다. 시가 나를 방!해서 나는 시를 받아 적었다. 내 시를 읽는 분들께 그 한 방!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질 바랄 뿐이다. 어느새 시력(詩歷) 서른 해에 닿았다. 시인 30년이라니!”라고 했다.

   정 시인에 대해 천양희 시인은 “그의 시가 사무친다. 저주 위에 주저앉아 시를 쓴다고 할 때 사무치고 시에 밥 비벼먹고 배부른 저녁이고 싶다고 할 때 더욱 사무친다. 시가 시인의 가슴에 피고름 만드는 고름가슴병이란 병도 있다고 말하는 그는 천상 시인이다”고 말했다.

   또 정호승 시인은 “존재에 대한 그의 겸허한 태도는 그가 살고 있는 ‘은현리’의 바람과 별과 꽃과 감자와 때죽나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참으로 눈물겹고 아름답다. 그의 시는 마치 슬픔 끝에 찾아온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다가, 그만 그 웃음 끝에 저절로 눈가에 맺히는 눈물과 같다”고 말했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3년 4월 26일(금)자 13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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