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인문학 칼럼] 박태일 교수
[국제신문 인문학 칼럼] 박태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4.1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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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빼앗긴 섬 되찾는 노력 통해 日 독도침탈 야욕 반드시 분쇄해야

   대한민국을 향한 일본 정치권의 능멸이 도를 더하고 있다. 저들 외교백서에까지 독도를 제 땅이라 버젓이 올렸다. 아예 1945년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야욕을 숨기지 않는다. '일본사람'임을 포기하고 다시 '왜놈'이 되고자 작정한 셈이다. 그래도 양식 있는 일본사람이나 세계 시민사회를 향한 홍보를 꾸준히 이끌 일이다. 그런데 독도 침탈 문제는 섬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세 쪽이 바다인 우리 겨레가 오랜 세월 바다에서 펼쳤던 역사와 삶, 먼 미래와 맞물린 일이다. 게다가 대마도 환속과도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을유광복 뒤 혼란 속에서 대마도 한국 환속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가 수산인 정문기(1898~1996) 박사다. 소책자 '대마도의 조선 환속과 동양 평화의 영속성'을 앞세운 일이었다. 이것은 1948년도에 펴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부산수산대학교(부경대학교) 교장이었던 그가 광복 두 달 뒤인 10월 15일 서둘러 펴낸 뒤 각계에 돌렸다. 본문 22쪽 세 매듭으로 짜인 짧은 것이다. 첫머리에 한글 소논문 '대마도의 조선 환속과 동양 평화의 영속성'을 싣고, 이어서 '대마도문헌고'를 붙인 뒤, 맨 끝에 소논문의 영문 번역문을 올렸다.

   먼저 '대마도의…'에서는 대마도를 하루바삐 우리에게 환속시켜야 하는 까닭을 밝혔다. 말뿌리에서 시작하여 지정학적·역사적 사실에서 대마도가 우리 속령이었음을 여러 길로 짚었다. 그에 따르면 '쓰시마'라는 일컬음은 우리말 '두 섬'에서 비롯했다. 위치로 볼 때도 대마도는 우리 영향권이다. 우리 남단에서는 53km, 일본 구주에서는 그 두 배가 넘는 147km나 떨어져 있으니 마땅한 지적인 셈이다. 이어 문헌상으로 고려에서부터 조선 시대까지 대마도가 육백 년을 넘도록 우리에게 복속된 땅이었음을 낱낱으로 풀었다.

   그런 다음 글의 속살은 앞으로 대마도와 우리의 관계 설정으로 나아갔다. 지난날 대마도는 왜구 해적의 소굴이었다. 앞으로 밀수의 근거지가 될 뿐 아니라, 이기·배타를 버릇으로 지니고 있는 저들의 약탈적 고기잡이가 저질러질 것이다. 대마도가 음모 책동의 기지가 될 수도 있다. 1941년 태평양침략전쟁 무렵 발표되었던 이른바 '관부해저철도계획'과 같은 것이 선례다. 정 박사는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대마도의 한국 귀속은 필수적이라 단호한 목소리로 글을 마무리했다. 만약 대마도를 우리나라에 환속시키지 못한다면 UN 관할 아래 중립지대로 두어야 할 것이라는 차선책까지 염두에 둔 주장이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잇달아 여러 차례 주요 인사들을 만나 대마도 귀속을 역설했다. 그럼에도 그때 말뿐 실질을 얻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 소책자에서 눈여겨 볼 데가 있다. 둘째 매듭 '대마도문헌고' 끝에 '참고'라 하여 백남운, 황의돈, 신동엽 세 역사학자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덧붙인 곳이다. 대마도 환속은 정문기 개인이 아니라 광복기 뜻있는 지식인의 공통 염원이었음을 알게 하는 증거다. 정 박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노력은 드디어 1948년 2월, 입법원 204차 회의에서 대마도의 우리 영토 복귀를 결의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이어서 대한민국 건국 행정부 출범 직후인 1948년 8월 18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대마도 반환 요구'를 발표했다. 그러자 저들은 대마도의 한국 관련 유적 지우기에 부랴부랴 나섰다. 지금부터 60년을 갓 넘긴, 가까운 시기의 옛일이다.

   1860년대 양요·쇄국에서 1910년 경술국치 사이,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들머리까지 50년 남짓 짧은 사이, 제국주의 침탈과 동아시아 근대 민족국가 수립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빼앗긴 땅이 남으로 대마도요 북으로 간도 벌이다.

   대마도 환속 문제는 하루바삐 물 위로 드러낼 겨레의 과제다. 그리고 그 일은 일본의 독도, 동해 침탈 야욕 분쇄와 맞물려 있다. 우리의 바다 역사학·민속학·지정학·지역학의 꾸준하고도 깊이 있는 연구 역량, 성과 축적이 필요한 바다. 그 중심에 마땅히 바다 도시 부산 학계와 시민사회가 앞장 설 일 아닌가.

<위 글은 국제신문 2013년 4월 18일(목)자 31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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