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규 전 장관 “김정은, 멘토 3인방이 돕고 있고 내년 물자도 충분히 비축”
박재규 전 장관 “김정은, 멘토 3인방이 돕고 있고 내년 물자도 충분히 비축”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1.12.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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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부 장관을 지낸 박재규 경남대 총장(67)은 21일 서울 북한대학원대학교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북한체제 안정 문제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인터뷰는 경향신문 조호연 사회·기획에디터가 진행했다.

- 남측 인사 중 김정일 위원장을 가장 많이 만난 분 아닌가. 소회가 남다를 텐데.

“김정일 위원장은 나를 ‘고집쟁이 장관’이라고 부르곤 했다. 안 풀리는 거(남북 현안) 자꾸 가서 요구하니까 그랬다. 2000년 2차 남북장관급회담 때 자강도 강계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도 한판 했다. 철도 연결하는 문제로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열자고 했는데 군이 반발해서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북한 군부는 위원장님 명령도 안 듣습니까’라고 내질렀다. 그러니까 김 위원장이 바로 자기가 군부를 설득할 테니까 국방장관회담 하자고 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냉전관계를 만든 책임이 우리뿐 아니라 북한에도 있는데 당사자인 김 위원장이 그걸 해결하지 못하고 떠나서 안타깝다.”


- 김 위원장은 KAL기 폭파사건과 아웅산 테러사건 등을 주도하고 북한 인민들을 가혹하게 다스렸다. 김정은 후계자는 권력만이 아니라 이런 그늘도 함께 물려받았다. 이 부분은 어떻게 봐야 하나.

“이걸 털고 넘어가려면 김정은 후계자가 할아버지 때, 아버지 때 일어난 어두운 일들에 대해서 미안하다든지, 죄송하다든지 그 정도 사과는 해야 한다. 말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맺어 남쪽하고 협력하면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 새로운 관계가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나.

“당장은 어렵다. 과거 우리가 화해협력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을 때 북에서 자꾸 멈칫했던 이유가 ‘북한 체제 지키기’였다. 북한은 체제 유지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 같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계를 중단시켰다. 앞으로도 3대째 이어간 수령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남쪽이 심하게 자극할 경우 냉전적 관계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부에서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저 친구들은 국상 중인데 ‘아 남쪽이 우리가 멸망하도록 바라는구나’라고 생각하면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 조문 문제 대처는 어떻게 보나.

“지금 정부의 결정은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는 정부가 정부 차원에서 조문단을 보낸다면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해진다. 다만 현정은 회장 등이 조문하러 갈 때 통일부에서도 가서 남북관계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향후 남북관계를 위해 필요하다. 거기다가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고 봄이 되면 이산가족 상봉까지 하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거다. 미국하고도 얼마 전 24만t 영양식을 지원받는 대신 핵실험 동결해 놓고 IAEA 사찰 받겠다고 약속했다.”

- 미국과 빨리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북한 안정화에도 도움이 되나.

“미국도 내년 대통령 선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북·미대화는 윈윈게임이다.”

- 김정은 체제는 연착륙할 것인가.

“북한 주민들의 생각이 중요할 텐데
장례절차가 마무리되면 북한 내부는 완전히 김정은 후계체제를 뒷받침하는 데 결속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 때보다 강하게 결속된다. 마음속으로야 불만이 있더라도 그렇게 갈 거다. 오히려 김 위원장 때는 이미 권력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갔지만 이번엔 인위적으로라도 그렇게 만들 거다. 장성택, 김영남, 리영호, 김경희 등의 ‘멘토단’이 이미 2008년 김 위원장 뇌졸중 이후에 속된 말로 리허설을 많이 해 놨다. 김정은 후계체제를 놓고 직간접적으로 중국과 공조해 여러 가지 준비해 놓은 상황이다.”

- 김정일 위원장은 거의 국내에서
성장하고 활동했지만 김정은은 일시적이지만 소년기에 스위스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김정은의 북한은 이전과 달라질 수 있을까.

“김정은 부위원장은 아버지가 밟은 20년 통치수업 경험이 없다. 그러나 북한은 특수체제다.
멘토링단에서 부족한 것을 다 연구해서 지도자가 사인만 하면 대변인 격인 사람이 발표하고 당 기구를 통해서 실현한다. 김 부위원장이 지금부터 최저 4~5년 정도 지나면 나이가 34~35세 되지 않나. 그 정도 되면 북·미관계나 남북관계도 달라져 있을 수 있고 아마 자기 생각대로 북한의 발전을 위해서 자기 대에서 수령체제는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 측근으로부터 듣기론 지금 김정은 후계자 중심으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북한체제에 맞게끔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 누가 연구하고 있다는 말인가.

“중국의 협조를 받아서 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식 개혁개방이라고 부른 것을 이어받아서 연구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지시를 받아 외교무대에서 활동해온 강석주, 김계관 등이 있지 않나. 이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중국과 긴밀한 장성택을 포함해서 멘토단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것이다.”

- 장성택을 몇차례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어떤 인물인가.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이다. 치밀하다. 남한에 대한 이야기든, 해외에 대한 이야기든 북한에 있는 다른 고위층보다 말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입장이다. 황장엽 선생이 미국에 가서 ‘김정일이가 없어지고 장성택이가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발언하는 바람에 잠시 숙청된 이후로는 말을 굉장히 조심하고 있다. 장성택 쿠데타설 등이 나오고 있는데 실세 중 실세라고 하더라도 누구든지 김정은을 제치고 나설 상황이 아니다.”

- 앞으로 4~5년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 같다.

“김정은 후계자가 북한이 살아남는, 발전하는 쪽으로 개혁개방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면 변화가 오는 것이다. 그때가 돼 미국, 중국이 확실히 체제 보장을 해 준다고 하면 핵도 포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남쪽으로부터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김정일 위원장이 3년 유훈통치 후 선군정치를 내놓았듯이 김정은도 새로운 기조를 내놓을 수 있다. 3대 수령체제를 이어가기 위해서 필히 그렇게 할 거다. 할아버지가 내걸었던 게 북한 인민들에게 쌀밥과 쇠고기국을 먹이는 거였다. 그걸 유훈으로 받아서 김정일도 해결하려고 했지만 못했지 않나. 내년이 강성대국 원년인데 거기에 아마 강한 메시지를 두지 않을까.”

- 구호 말고 북한 주민의
피부에 와닿는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김정일 위원장이 했던 것은 경제적으로 밥을 안 굶도록 하는 것 외에
아파트 단장도 많이 하고 있다. 내년 초에 인민들한테 나눠줄 배급을 넉넉하게, 닭고기라도 나눠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 지금 당장 식량문제가 어렵다는데 비축할 여력이 있나.

“김정일 위원장이 내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준비하러 뛰어다녔다. 중국에 SOS도 치고,
러시아에도 가고, 해외 공관에 명령을 내려 조금이라도 달러를 벌어들여 사들이라고 했다. 쉽게 얘기하면 제1대 수령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에 잔치해 김정은 부위원장 아버지로서의 위상도 높이고 그 다음에 3대인 자기 아들이 (권력을) 잡았다고 세계에 ‘우리 건들지 말라’는 뜻을 담은 행사를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급사한 것이 아들에게는 절호의 찬스가 된 것 같다. 내년에 인민들이 똘똘 뭉쳐 김정은 부위원장을 3대 수령 지도자로 옹립할 것이다.”

- 하지만 비축해둔 것을 소진하고 나면 머지않아 김정은 본인 실력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할 게 아닌가.

“북·미관계가 조금 완화되고 이런저런 제재들이 풀리면 개선될 거다. 일본도 선언을 했지만 아직 이행하지 못한 ‘평양선언’ 이행 협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일본에 가서 고위층들과 대화했는데 준비하는 거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 북한이 어렵게 돼 있으니까 유엔 제재도 해제될 가능성이 있다.”

-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너무 심하지 않으냐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과 중국은 동맹관계를 넘어선 형제국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잘못되면 오히려 중국의 부담거리가 된다. 국경선이 무너질 때 탈북자들이 중국을 우리보다 더 신뢰하기 때문에 그쪽으로 많이 갈 것이다. 중국은 김정은 부위원장이 안정적으로 후계자가 될 수 있도록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 우리 정부 입장에선 마냥 좋아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 않나.

“그리 오래갈 상황은 아니다. 북한이 중국에 치우친다고 해서 북한이 중국에 병합된다든지 하는 우려는 할 필요 없다. 오히려 북한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수준으로 갈 때까지 중국이 도와줘야 우리가 평화적인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

-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보는가.

“북한뿐 아니라 한국도, 미국도, 중국도 큰 기회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비상상황이긴 하지만 어두운 과거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났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런 북한과 대화하는 데 대한 보수층의 반발과 항의가 줄어들 것이다. 미국이나 우리가 어떤 군사적인 압박을 가한다든지 오해 살 일만 하지 않는다면 필히 김정은 후계자는 전화위복 쪽으로 갈 것이다.”

향신문

글 이서화·사진 서성일 기자 tingco@kyunghyang.com (2011/12/21)

"이 기사는 경향신문의 허락을 얻어 게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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