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 3년간 포로생활 부산 거제리 수용소서 보냈다"
"김수영 시인 3년간 포로생활 부산 거제리 수용소서 보냈다"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1.01.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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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2일 부산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http://news20.busan.com/search/search.jsp

  '풀'의 시인 김수영(1921~1968)이 한국전쟁 당시 포로가 됐으며 포로생활 대부분을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근대서지학회(회장 전경수)가 최근 펴낸 '근대서지 2010' 제2호에는 김수영의 미공개 산문 '시인이 겪은 포로생활'의 전문과 이를 분석한 박태일 경남대 국문과 교수의 '김수영이 겪은 포로 생활과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라는 제목의 글이 함께 실렸다.


경남대 국문학과 박태일 교수 밝혀
6·25 당시 월간 '해군' 게재글 공개


김수영의 산문은 한국전쟁 당시 해군과 해병대의 통합 기관지였던 월간 '해군'(1953년 6월호)에 게재됐던 것으로 박태일 교수가 찾아냈다. 이 산문은 2009년 처음 공개된 김수영 시인의 또 다른 산문 '나는 이렇게 석방되었다'보다 2개월 먼저 발표된 것이다.

김수영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처 피난을 떠나지 못해 인민군에 의해 북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강제 징병돼 훈련을 받고 인민군 의용군으로 전장에 배치됐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1950년 10월 28일 의용군을 탈출해 서울에 왔다가 국군에 체포된다. 2주간 이태원 육군형무소, 인천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같은 해 11월 11일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로 옮기게 된다.

그는 1952년 11월 28일 석방되는데 25개월간 수감 기간 중 무려 20개월을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서 보냈다. 그는 1953년 '해군' 6월호에 원고지 30매 분량의 산문을 기고하면서 이런 포로생활의 궤적들을 알렸다.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는 1950년 7월 설치된 것으로 유엔군사령부 관할 아래 미 제8군사령부가 운영했다. 위치는 지금의 부산 연제구 연산동 부산시청과 부산지방경찰청 일대다.

박태일 교수는 "김수영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포로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머문 기간은 서너 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수영도 산문에서 "거제리 수용소에서 나는 삼 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김수영이 국군 포로로 잡히기 전 겪었던 인민군 의용군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속살도 산문에 들어 있다. 그는 10대 중반밖에 안되는 어린 분대장 밑에서 온갖 욕설을 들으며 통나무를 나르는 노역을 당했다. 영어 통역이 가능했던 지식인이었던 시인의 위상과는 동떨어진 일이었다. 김수영이 문화공작대와 같은 차원 높은 역할을 하진 않았던 것이다.

김수영의 사랑시 '겨울의 사랑'의 대상이 부산 거제리 수용소에서 만난 30대 여자 간호사 임 씨였다는 이야기도 산문에서 읽을 수 있다.

박태일 교수는 "포로생활을 담은 미공개 산문 발굴은 김수영의 초기 문학과 피란지 부산의 지역문학에 대해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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