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
박태일(국문학과) 교수는 시인이자 문학연구자다. 지역문화와 지역문학에 현안이 생길 때마다 학술적 근거를 탄탄하게 갖추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온 학자여서 때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발굴이나 문학적 성과를 올리고 때로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해왔다. 동시에 그는 '가을 악견산' '그리운 주막' '풀나라' '약쑥 개쑥'과 같은 시집을 통해 뼛속까지 시인이라는 점을 환기시켜왔다.
박 교수가 최근 산문집 두 권을 냈다. '새벽빛에 서다'와 '시는 달린다'(이상 작가와비평 펴냄)이다. 군더더기 없이 명징하고 문학적인 산문으로 써낸 이들 산문집은 각각 문학연구자로서 저자의 뿌리('새벽빛에 서다')와 시인으로서 저자의 감각('시는 달린다')를 환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역문학의 역사와 현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
박태일'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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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지역문학을 매개로 산문집 두 권을 펴낸 경남대 박태일 교수. 국제신문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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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새벽빛에 서다'에서 박 교수는 문학연구자이자 시인으로서 날카롭게 제기할 것은 제기하고, 조용히 회상할 것은 회상해서 기록하는 태도를 여전히 지킨다. 이육사 시인의 유일한 직계 혈족인 친딸 이옥비 여사를 2004년에 만났을 때 여사가 일본 니가타의 신사에 살고 있다는 답변을 듣고 놀라면서도 자리의 성격상 앞뒤 사정을 묻지 못하고 헤어진 것에 대해 그는 안타까워한다.('옥비의 글' 중)
1967년 부산 수영사적공원 안에 안용복 장군 충혼탑이 선 사연에 대한 설명에서는 지역문화사의 숨은 결을 찾아서 밝히는 그의 노력이 묻어난다. 수록글 '안용복 장군 충혼탑에 마음을 얹은 사람들'에 따르면 10년 가까이 끌어오던 안용복 장군 충혼탑 건립을 마침내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예술대와 동천고 설립자인 안관성 씨의 공헌이 매우 컸다. 천도교계 인물인 그는 건빵으로 유명했던 흥산제과를 이끈 사업가였으며 그밖에도 1960년대 한국철학을 독립학문영역으로 굳힌 학술지 '한국사상'을 크게 후원했다. 1920~1930년대 나온 어린이잡지 '어린이' 영인본을 낸 것도 그였다.
누구라도 쉽게 하기 힘들 법한 쓴소리도 빠지지 않는다. '대접 받기보다 남 대접해 주는 길로 들어선 이는 원로라 불릴 자격이 있다. 높은 이가 낮은 이보다 더 아래로 내려설 때, 그는 원로 될 바탕을 지녔다.…오래도록 원로라는 감당 못할 허명에도 부끄러움이 없었던 이들은 더 해악을 끼치기에 앞서 자신이 원로임을 세상에 증명해주기 바란다.…원로라는 이름에 미련이 남고, 그 이름값을 감당할 자긍심이 아직 조금이라도 남은 이라면 이제 대접 받고자 하는 일은 그만두고, 오히려 자신을 원로 대접해 준 세상의 은혜를 갚아나가는 길로 들어서기 바란다.'('원로의 덕목' 중)
지역문화계를 달궜던 부왜(친일)문학 논쟁, 준비가 철저하지 못한 지역문학관 설립 논의, 지역문학축제의 발전방안과 그 걸림돌 등에 대해서도 그는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의견을 내놓는다. 지역문화에 대해서 10여 년 전에 쓴 글도 꽤 있는데, 그런 글이 오래됐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그의 지적의 상당수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박 교수는 '시는 달린다'에서 천생 시인으로서 자신의 창작에 대한 시각과 체험과 생각을 차분히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