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학계 향해 무게있는 외침
지역문학계 향해 무게있는 외침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0.12.15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0년 12월 14일 국제신문 문화면에 실린 내용입니다.

http://www.kookje.co.kr/kindex.html

경남대 박태일 교수, '새벽빛에 서다' '시는 달린다' 최근 산문집 두권 펴내
지역문학 논쟁 의견 밝히고 날카로운 쓴소리도
창작에 대한 소신 드러내

 
 
 
 
경남대 박태일(국문학과) 교수는 시인이자 문학연구자다. 지역문화와 지역문학에 현안이 생길 때마다 학술적 근거를 탄탄하게 갖추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온 학자여서 때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발굴이나 문학적 성과를 올리고 때로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해왔다. 동시에 그는 '가을 악견산' '그리운 주막' '풀나라' '약쑥 개쑥'과 같은 시집을 통해 뼛속까지 시인이라는 점을 환기시켜왔다.

박 교수가 최근 산문집 두 권을 냈다. '새벽빛에 서다'와 '시는 달린다'(이상 작가와비평 펴냄)이다. 군더더기 없이 명징하고 문학적인 산문으로 써낸 이들 산문집은 각각 문학연구자로서 저자의 뿌리('새벽빛에 서다')와 시인으로서 저자의 감각('시는 달린다')를 환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역문학의 역사와 현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박태일'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준다.

 
  시와 지역문학을 매개로 산문집 두 권을 펴낸 경남대 박태일 교수. 국제신문 DB
 
산문집 '새벽빛에 서다'에서 박 교수는 문학연구자이자 시인으로서 날카롭게 제기할 것은 제기하고, 조용히 회상할 것은 회상해서 기록하는 태도를 여전히 지킨다. 이육사 시인의 유일한 직계 혈족인 친딸 이옥비 여사를 2004년에 만났을 때 여사가 일본 니가타의 신사에 살고 있다는 답변을 듣고 놀라면서도 자리의 성격상 앞뒤 사정을 묻지 못하고 헤어진 것에 대해 그는 안타까워한다.('옥비의 글' 중)

1967년 부산 수영사적공원 안에 안용복 장군 충혼탑이 선 사연에 대한 설명에서는 지역문화사의 숨은 결을 찾아서 밝히는 그의 노력이 묻어난다. 수록글 '안용복 장군 충혼탑에 마음을 얹은 사람들'에 따르면 10년 가까이 끌어오던 안용복 장군 충혼탑 건립을 마침내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예술대와 동천고 설립자인 안관성 씨의 공헌이 매우 컸다. 천도교계 인물인 그는 건빵으로 유명했던 흥산제과를 이끈 사업가였으며 그밖에도 1960년대 한국철학을 독립학문영역으로 굳힌 학술지 '한국사상'을 크게 후원했다. 1920~1930년대 나온 어린이잡지 '어린이' 영인본을 낸 것도 그였다.

누구라도 쉽게 하기 힘들 법한 쓴소리도 빠지지 않는다. '대접 받기보다 남 대접해 주는 길로 들어선 이는 원로라 불릴 자격이 있다. 높은 이가 낮은 이보다 더 아래로 내려설 때, 그는 원로 될 바탕을 지녔다.…오래도록 원로라는 감당 못할 허명에도 부끄러움이 없었던 이들은 더 해악을 끼치기에 앞서 자신이 원로임을 세상에 증명해주기 바란다.…원로라는 이름에 미련이 남고, 그 이름값을 감당할 자긍심이 아직 조금이라도 남은 이라면 이제 대접 받고자 하는 일은 그만두고, 오히려 자신을 원로 대접해 준 세상의 은혜를 갚아나가는 길로 들어서기 바란다.'('원로의 덕목' 중)

지역문화계를 달궜던 부왜(친일)문학 논쟁, 준비가 철저하지 못한 지역문학관 설립 논의, 지역문학축제의 발전방안과 그 걸림돌 등에 대해서도 그는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의견을 내놓는다. 지역문화에 대해서 10여 년 전에 쓴 글도 꽤 있는데, 그런 글이 오래됐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그의 지적의 상당수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박 교수는 '시는 달린다'에서 천생 시인으로서 자신의 창작에 대한 시각과 체험과 생각을 차분히 풀어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