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나는 희곡 읽기
재미나는 희곡 읽기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6.04.0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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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소꿉놀이와 같은 연극, 연극 관람을 통해 무대의 문법 터득해야


시작하며

우리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지역을 문화 불모지라고 치부하곤 하는데 경남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타 공연예술은 어떨지 몰라도 경남 연극계만은 바쁜 걸음으로 술렁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경남연극제>가 김해 <문화의 전당>에서 삼천여 명이 관람한 가운데 막을 내렸다. 오는 5월에는 마산에서 <국제연극제>가, 여름에는 거창과 밀양 연극촌에서 국제적 규모의 연극 축제가 열린다. 내년에 경남연극계는 더욱 바빠질 예정이다. <전국연극제>가 경남에 유치되었기 때문에 <경남연극제>에 이어 거제에서 <전국연극제>가 개최될 예정이고, <세계연극총회>와 연극축제가 창원에서, 그리고 마산, 거창, 밀양에서 차례로 국제 연극축제가 열리게 된다. 각 지역극단의 정기공연과 각종 문화활동의 일환으로 갖는 순회공연, 통영과 창원에서 열리는 소극장 축제를 합한다면, 경남은 문화 불모지이기는커녕 문화가 매우 활성화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객석이 꽉꽉 채워진다고 하지 않는가. 문화의 불모지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어디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지역민이나 학생들의 연극에 대한 인식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수업시간에 강의를 하다보면 들려주고 싶은 말로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가 많다. 연극이나 그의 기반이 되는 희곡에 대한 이해가 부실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연극은 소꿉놀이

사실 연극은 우리에게 낯선 문화가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릴 때 학교 다닐 때 혹은 놀이를 할 때 연극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어른들의 삶을 흉내낸 어릴 때 소꿉놀이를 떠올려 보자. 대충 함께 할 이야기를 나누면서 역할을 정하고 말과 행동으로 소꿉놀이를 했다. 소꿉놀이를 해 보지 않고 자란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어릴 때 즐겨 놀았던 그 소꿉놀이가 바로 연극이다. 다만 소꿉놀이가 연극이라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이야기를 가지고 배우들이 역할을 분담해 대사하고 액션을 취하는 것이 연극인데, 소꿉놀이와 별반 다른가. 외에도 학예회에서의 연극공연이나 교회에서의 성극공연. 학교 동아리의 연극부 활동 등등이 늘 우리 주변에 있어 왔다.

그러던 것이 성장한 후 우리는 일상에서 연극문화를 전혀 가까이 하지 않는다. 나와는 거리가 먼 다른 어떤 것, 다른 세계로 생각한다. 비근한 예로 춤과 노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살면서 꼭 필요한 것이 춤이요 노래라고 생각하고 살면서 늘 가까이 두고 즐긴다. 어릴 때 춤과 노래와 더불어 연극놀이를 즐겨왔는데도 불구하고 어른이 되면서 유독 연극만은 낯설어한다.

사실 연극이나 희곡에 거리감을 갖게 된 것은 우리의 교육 현실이 톡톡히 한 몫을 해 왔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시나 소설은 자의든 타의든 미우나 고우나 달달 외우고 읽었다. 12년이라는 세월은 자연스럽게 시를 이해하거나 소설을 읽는 방법을 체득하게 만들었다. 상징이 과잉이건 문법이 낯설고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하더라도 대충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희곡의 형편은 다르다. 가뭄에 콩 나듯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하는 것이 연극을 가까이 하는 유일한 행위다. 다리품 파는 학생들의 고충은 자치한다 하더라도 오전이나 오후 수업은 아예 제켜야 하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희곡은 형편이 더욱 심각하다. 국어책에 양념처럼 겨우 끼어 있는 것이 희곡이고 그나마 장면만 뚝 잘라 실려 있어서 도대체 무슨 얘긴지 감을 잡을 수가 없고 이해가 되질 않으니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생님들은 이왕 책에 나와 있으니까 그냥 넘길 수는 없고 "너, 이 역 해 봐라, 너는 이 역 해 보고" 학생들에게 읽기를 분담시키는 식으로 대충 때운다. 어줍은 배우 흉내 내는 반 학우의 모양새를 보고 모두 배꼽을 쥐며 웃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웃고 넘어가는 게 희곡이었다. 이게 교육현실이고 보니, 어찌 희곡을 제대로 읽고 이해를 할 수가 있을까.

교육현실이 이렇다고 하지만 실지로 연극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가 돼 버렸다. 자꾸 늘어만 가는 것이 연극학과 혹은 그 관련 학과이고 서울 바닥에 넘쳐나는 것이 배우며 배우 지망생이다. 초·중등·대학의 각 학과나 동아리에서 빠지지 않는 것 역시 연극반이다. 용기가 없을 뿐이지 연극을 해 보고 싶어 하고, 실제로 관심이 꽤 높은 편이다. 이를 미루어 보아 열악한 교육현실을 개척하는 것이 급선무다. 강단에 서는 필자 역시 학생들의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것을 우선책으로 여긴다.

희곡을 제대로 읽으려면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희곡 읽는 일을 어쩐지 부담스럽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한다. 어쩌다 희곡을 대하면 사실 지루하고 고되기까지 하다. 왜? 대답은 간단하다. 읽는 방법을 잘 모르니까.

희곡은 특성상 시나 소설과 다르게 읽어야 하는데, 마치 시나 소설처럼 읽으려 하기 때문에 잘 읽혀지지 않는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나 인물의 내면이 자연스레 읽혀지는 소설과 달리 아무런 방향도 가닥도 잡히지 않는 것이 희곡이다. 희곡에서의 작가는 등장인물 뒤에 숨어 도통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인물의 말을 쭉 따라가야 내용이 이해된다. 걸리적거리는 것도 참 많다. 막이나 장, 장면별로 나눠 있어 그것을 이어 내용을 이해해야 하고 인물의 대사만으로 스토리를 이어 나가야 한다. 또 인물의 대사를 공들여 읽다가 보면 이전 인물이 했던 말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내용을 이해하려면 몇 번이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인물의 이름을 재차 확인해야 하거나 이전 페이지를 다시 넘겨봐야 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많은 사건들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져 지루하기 짝이 없다. 시·공간을 팍팍 넘나드는 21세기 영상시대에 웬 뒤떨어진 장르인가 싶을 것이다. 또 요즘 씌어진 희곡이라는 것이 무수한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어 그것을 조합하려면 머리가 빠개질 것만 같으리라. 희곡 읽기가 고되고 지루해져 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인지 모른다.

무대의 문법 이해

그러나 이것이 다인가? 아니다. 읽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다만 이러한 일차원적인 수고가 힘겨움으로 다가올 뿐이다. 희곡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을 무한히 넓히는 질 높은 독서감에 속한다. 다만 제대로 읽는 법을 몰라서 어렵게 느껴질 뿐이다. 촌놈이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려면 참 환장할 노릇으로 그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다. 그러나 몇 번만 반복하다 보면 별거 아닌 줄 대번에 안다. 이처럼 희곡 역시 그것의 태생적인 모습을 이해하거나 구조와 문법을 차근차근 익혀간다면 매우 즐겁고 유익한 독서가 된다.

우선 희곡의 태생적인 모습을 한 번 짚어보자. 읽히기 위해 씌어진 희곡을 제외하고 대체로 희곡이 씌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무대에 올리기 위해 씌어진다. 극작가의 최종 목표는 바로 연극공연에 있다. 공연을 목표로 무대의 관습 이것저것을 숙지한 후에 공연될 것을 기대하면서 작가는 희곡을 쓴다. 이것은 희곡을 읽을 때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무대를 머리 속에 연상하면서 희곡을 읽어나가야 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무대가 머리 속에 그려지고 인물이 확연해지면서 장면이 연상된다. 최종적으로는 인물의 잇단 행동이 연상되며 심리적 움직임까지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읽는 이의 가슴속에 꿈틀대는 감정, 즉 감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작가의 설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상상이나 연상에 의해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나아가 '연극적 상상력'은 독자의 감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단 연극적 상상력은 무대의 문법을 이해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실상 무대의 문법을 이해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무대구역이 어떻게 나누어지고 인물의 상태와 어떻게 결부되는지, 조명 기능이 참으로 다양한데 어떠한 쓰임을 가지고 있는지, 대사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리얼한 연기와 양식적인 연기·무대장치는 어떻게 구별되어지는 지 등등. 이를 공부하려면 시간이나 노력이 많이 소요되고 이것을 알기도 전에 벌써 지쳐버린다.

연극관람이 지름길

하지만 이것을 해결해 줄 지름길은 있다. 다리품을 좀 팔더라도 연극공연을 보는 것이다. 연극의 문법을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길은 사실 공연을 보는 것이 제일 빠르고 쉽다.

무대는 영화나 TV드라마처럼 테크놀로지에 의해 미리 제작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생생하게' 보인다. 무대와 관객이 옮겨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이 제약되는 특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극 속 사건은 시간과 공간이 매우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배우의 연기조차 불필요한 동작이 생략되어 사건과 연관된 액션만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므로 희곡 역시 시·공간이 압축되어 있다. 이야기가 집약되어 있고 등장인물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사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희곡 속 플롯도 매우 중요하다. 짧은 시간 내에 사건이 발생하고 발전하기 때문에 문제적 상황이 잘 포착되어 있고 적절한 위기의 순간에 인물간의 갈등이 투쟁을 일으킨다. 나아가 인간의 삶의 진실까지 드러나기 때문에 희곡에 있어 잘 짜여진 플롯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정확한 캐릭터와 적합한 인물간의 관계까지도 고려된다. 희곡은 치밀한 작업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 역시 고도의 집중적인 읽기가 요구된다.

짚어봐야 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연극은 이것저것 여타 예술 장르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희곡에는 미술과 음악, 무용 등의 여타예술 분야가 복합적으로 쓰여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미술이라는 장르는 무대장치, 대·소도구, 조명, 소품, 의상, 분장 등으로 적합하게 바뀌어 쓰인다. 하지만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희곡에서는 그 명칭이 일일이 밝혀지지 않고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그가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고친다"라고 하지 "그가 소품을 보고 입은 의상을 매만진다"라고 적혀 있지 않다. 음악은 음향효과, 노래, 배경음악 등으로 쓰이고, 무용은 춤으로 희곡 속에 꼭꼭 숨겨져 있다. 이러한 여타 장르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스토리에 숨어 있고, 희곡을 읽을 때 연극적 상상력을 일으키는 토대가 된다.

마무리

때문에 그것들의 기능이나 쓰임새, 효과 등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공부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하고 힘이 든다. 이해의 제일 빠른 길은 역시 공연을 보는 것이다. 공연 서너 편만 본다면 연극의 문법이 손금 보듯 빤해지고 희곡 역시 수월하게 읽히게 될 것으로 본다. 평면적인 스토리가 입체적인 모습을 띠면서 독서가 훨씬 감각적이고 재미있는 것이 된다. 자연스럽게 사건이나 인물이 형상화되면서 이미지가 머릿속에 하나의 영상을 이룬다. 우리가 희곡을 읽는 행위는 머릿속에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일이다. 복제된 영상처럼 수동적으로 받아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만든 드라마 한 편을 말이다. 희곡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살아 꿈틀댄다면, 그들의 말소리가 들리고 그들이 행동하는 것이 느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희곡의 독서다. 재미나는 희곡 읽기를 원한다면 우선 연극부터 보라고 권하고 싶다.

김소정 강사(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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