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사회봉사활동 체험 수기] 개인 - 금상 이지나(정치언론 3)
[2005 사회봉사활동 체험 수기] 개인 - 금상 이지나(정치언론 3)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5.12.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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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난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저는 가난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달까지도 찾아갈 겁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

지난 2004년 11월 인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달 여의 시간이 지났을까. 한 친구를 통해 「마더 하우스」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저 보고 즐기는 여행에 빠져 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결국 난 마더하우스로 향하게 되었고 2004년의 마지막 날 마더하우스에 첫 발을 내딛었다. 난 마더하우스 본부에서 남녀불문, 나이불문, 국적 불문의 다양한 사람들과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인상 좋으신 담당수녀인 칼리나 수녀님과 상담을 하였다.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기간은 단 일주일. 수녀님은 내게 축복을 빌어주시면서 내게 자원봉사자로서의 역할을 주셨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

마더하우스에서는 여러 구호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내가 자원봉사를 하기로 한 곳은 정신지체아 및 신체장애 어린이들이 생활하는 「다야단」과 죽음을 기다리는 집으로 유명한 「칼리가트」 두 군데였다. 초보 자원봉사자인 내가 할 일은 앞치마를 둘러메고 빨래를 하는 등의 육체노동이 주였다. 엄청난 양의 일거리는 기계의 도움 없이 순수한 사람의 노동력으로 이루어지는데 숙련된 봉사자들과 수녀님들이 신속한 솜씨로 일을 하고 있으면 초보봉사자들은 눈치껏 끼어서 일손을 보태여야 했다. 아무도 일을 시키지는 않는다.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한다. 또한 현실은 냉정했다.「다야단」과 「칼리가트」의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짧은 시간 내에 주어진 할당량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쉴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육체적인 고통에 의해 나도 모르게 후회가 밀려왔다. 괜히 주위의 모든 것에 화가 났고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본래의 마음이 쓸데없이 여겨졌다. 너무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칼리가트에서였다. 나의 터무니없는 생각들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빨래를 한창 하고 있는데 옆으로 한 구의 시체가 실려 나가는 것이었다.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그렇게 가까이 접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 여기는 「칼리가트」다. 죽음을 기다리는 집. 난 지금 그곳에 있는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내리쬐는 태양에 눈은 부신데 옷은 젖어 축축했고 손바닥을 보니 쭈글쭈글해져 할머니 손 같았다. 괜히 웃음이 났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머릿속이 복잡해 왔다. 축복 받아야 마땅할 새 생명이지만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다하여 버림받은 「다야단」의 아이들에게도, 죽을 날만 기다리며 하루하루 연명해 가는 「칼리가트」의 고령의 노인들과 불치병 환자들에게도, 그리고 이곳에 서 있는 보잘 것 없는 나에게도 똑같이 태양은 내리쬐고 있는 것을, 모두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존재임이 틀림없거늘 난 그들보다 뭐가 그리 잘났기에 누굴 도운다는 것에 한 순간이라도 우쭐해 있었단 말인가.

인도 캘커타 「마더하우스」에서 보낸 일주일은 나를 성장시켰다. 생의 「다야 단」과 죽음의 「칼리가트」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순간들. 남을 돌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는 것. 보여주기 위한 봉사가 아닌 사랑과 진심으로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 이런저런 여러모로 생각이 많았던 「마더하우스」에서의 일주일! 난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난 지금 준비를 하고 있다. 좀 더 나은 봉사자로써 살아갈 수 있도록. 「마더하우스」에서의 일주일은 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지나(정치언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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