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재소고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재소고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5.11.1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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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윤리를 핵심으로 하는 아시아적 가치, 경제도약의 중요한 요인'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는 세계화(globalization)가 수반하는 문화적 동질화의 위력을 극복하여 생존할 수 있을까? 전후 일본의 급부상 그리고 70∼80년대 네 마리 작은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성공적인 산업화, 뒤이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고도의 경제성장은 서구인들에게 아시아적 가치 혹은 유교가치가 이들의 경제성장에서 갖는 역할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그러나 1997년 말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금융·경제위기와 일본경제의 장기침체는 그 동안 질서, 근면, 검소, 교육, 가족주의, 공동체의식 등으로 인식되어 온 아시아적 가치가 허상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비효율적인 정실주의와 부정부패의 근원이며, 권위주의, 보스(boss)제도, 그리고 정책결정의 폐쇄성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폄하되었다. 그러나 서구인들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이러한 일방적 비하는 일면적이며 과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아시아적 가치나 유교가치는 일반적으로 서열과 기강의 덕과 복종의 의무로 이루어진 단일 패키지로서 인식되어 왔지만 오늘날 우리는 유교문화권의 국가들에 있어서 가장(家長)과 같은 국가의 개념과 에토스(ethos)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강한 가족윤리 그리고 교육과 일에 대한 헌신에 있어서 어떠한 외부 영향력에도 분명 기인하지 않은 하나의 독특한 패턴을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세계화 명제를 입증하기 위한 서구인들의 연구에 있어서조차 그들의 의도에 반하는 이러한 특징들이 증명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시아의 특징들이 서구(미국) 문화의 세계화가 미치는 영향 아래에서 과연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서구에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연구의 결과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어 놓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유교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 동아시아의 어떤 나라에서도 통치이념이나 교육이념으로 지정된 공식적인 유교는 없다. 그렇다면 아시아적 가치란 서구화, 근대화, 산업화, 대중매체의 발달 그리고 이러한 것들의 해로운 영향이 시작되기 전 모든 전통적 사회의 구성과 통합에 공통적으로 토대가 되어온 강력한 가족윤리(family ethic)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서구인들이 비하하는 아시아적 가치란 근자에 미국의 정치인들이 가족의 가치를 찬양하고 그러한 가치의 쇠퇴를 통탄해 할 때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족의 가치는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부가적인 가족 대체제도들이 다양한 기능들을 떠맡고 있는 현대의 선진사회에서 가족의 범위와 중요성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분명 가족의 유대는 경제적 효율성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것은 수 천년 동안 이 세계가 운영되어 온 방식의 토대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회과학자들이 동아시아의 국가들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경제발전의 유일한 혹은 핵심적인 요인일 수는 없다. 동아시아의 경험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이 가치들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촉발시키는데 기여했다기보다는 일단 경제발전이 시작된 후, 정치적 안정과 올바른 경제정책 등과 같은 다른 핵심 요인들과 결합하여 이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데 있어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유교는 형식적인 의례적 요소들이 제거되고 가정의 영역에 한정됨으로써 그 범위가 상당히 축소된 후에야 비로소 경제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급속한 경제발전의 진행과 함께 동아시아 국가들에 있어서는 전통적 가치들이 지금 세계화(서구화)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얼마나 오랫동안 이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높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아시아적 가치든 유교가치든 강한 가족윤리를 핵심으로 한 이러한 가치들은 이들 경제의 도약에 박차를 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었으며 지금이 바로 그러한 특성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구의 기준으로 볼 때 아시아적 가치는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견고하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폄하 속에 고려되지 않은 것은 계속 지속되고 있는 바로 이 견고함이다. 세계화가 사회적, 문화적 특징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러한 특징들을 훼손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훼손의 정도는 다른 문화와 비교하여 의외로 낮다.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의 경제위기와 함께 아시아의 경제발전은 그 정점을 막 지났다는 추정이 널리 퍼졌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우려가 사실이 아님을 지금 목격하고 있다. 이것의 주 원인은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을 떠받치고 있는 아시아의 가치들은 서구와 비교하여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한결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수많은 측면에 직면해서도 전통은 스스로 유지되고 있다. 아시아적 가치를 따돌리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설한 강의전담교수(정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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