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판암 교수(컴퓨터공) 수필 10편 월간 문학저널 실려
한판암 교수(컴퓨터공) 수필 10편 월간 문학저널 실려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5.10.0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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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암 교수(컴퓨터공)의 수필 '화이트 헤어' 등 10편이 월간 문학저널 9월호 권말작품집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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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암 선생은 작품활동도 비교적 왕성하게 하고 있는 분이다.
전공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글쓰기에 어떤 연유로 빠져든 것인지는 몰라도 애정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선생의 작품세계는 다양하기만 하다.
가정사에서부터 역사 사회적 고찰, 부조리 문제, 자기 성찰 등 다양한 주제를 소화해 내고 있다.
특히 고사성어 인용에 있어서는 일가를 이루고 있어서 작품뿐만 아니라 댓글을 달아주면서도 곧잘 인용을 한다.
-수필가 임병식 평 중에서

*작가약력*

ㆍ한맥문학 신인상(수필부문) 수상(2003)
ㆍ문학저널 신인상(수필부문) 수상(2004)
ㆍ마산문인협회 회원
ㆍ한국문인협회 회원
ㆍ경남IT포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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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헤어

화이트 헤어(white hair)! 이는 내 처조카가 나를 지칭해 부르던 호칭이다. 제 아버지가 십 수년간 미국 유학을 하던 시절에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다 낯선 조국으로 돌아온 아이였다. 귀국 직후 우리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말이 서툴고 문화가 달라 문제아 취급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아이와 며칠 함께 보낼 때, '고모부'라는 호칭을 알리 없던 아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던 지칭이 '화이트 헤어'였다. 그 어린 아이의 눈은 정확하며 송곳처럼 날카롭고 예리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젊은 나이에 백발(白髮)이 성성하여 백두옹(白頭翁)* 모습으로 비추이는 내가 싫었고, 일종의 열등의식을 숨기며 지내던 터였다.

따지고 보면 어느 하나 반듯하다거나 내 세울 외양이 아니기에, 특별히 한 가지를 들어 열등의식 운운하는 자체가 가소로운 일이다. 하기야 훤칠한 귀공자의 풍모에 지성미가 넘치는 사람이, 고운 백발의 단아한 모습이라면, 신비로운 자태에 흠모하고픈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매혹적인 빼어남이나 고결한 품격의 먼발치에도 이르지 못하는 주제에, 일찍이 백발이 되어 황당한 경우를 겪고 또 겪었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무슨 일이 있어, 손을 잡고 함께 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그 다음 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하는 말이 '제 친구들이, 어제 할아버지와 함께 가는 것 봤다며, 너는 할아버지와 잘 다니느냐고 묻더란다.' 그런 말을 하면서 '창피하니 아버지는 내 친구들 보는 앞에서 아는 척도 하지말고, 자기 학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사십대 초반부터 열차나 고속버스 여행 중에, 앞뒤 자리에 젊은 여인네가 데리고 동승한 어린이를 어르고 웃기기를 조금하면, 어김없이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가야! 할아버지 피곤하시니 그만 조용해야지'라고 타이르기 일쑤였다. 어이해야 할 것인가! 그 아이들의 엄마인 여인네 나이는 내 아내보다 불과 몇 살 아래 정도인데, 나를 보고 할아버지라는 억지 주장을 펴는 횡포에 대응할 도리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주민등록증을 내보이며 확인시킬 수도 없는 고약한 노릇이기에 표정과 감정 관리가 난감했다. 어디 그뿐이었던가. 어쩌다 손위분과 시내 버스라도 타면, 손위 어른께는 몰인정하다가도 나에게는 어김없이 자리를 양보하던 선남선녀들의 자비 정신에, 쥐구멍에라도 기어들고 싶게 만들었던 기억을 어찌 잊을 손가. 다행스러웠던 것은 내 삶터는 백발이 큰 흠결(欠缺)로 여겨지지 않았으며,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되기도 해서, 염색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티는지 모르겠다.

세상만사 동전의 앞뒷면 같이 양면성을 가짐은 당연한 진리였던가 보다. 백발이 노상 열등의식이나 가슴앓이를 유발시키는 원흉 노릇만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동안 공무원이나 선생님 혹은 기업의 임직원 같은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했던, 수많은 특강이나 교육에서 백발 덕을 봤던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제자들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어린 나이에 주례(主禮)라는 거룩한 자리에 오르내리며, 떨리고 초조했던 속내를 숨기는데 백발이 뛰어난 공헌을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연유에다가 빼어난 특성 없이 밋밋한 생김새로 인해서, 나를 기억하는 대표적인 특징이 백발뿐인가 보다. 해서 오랜만에 만나는 제자나 지인(知人)들은 한결같이 '흰머리 변함 없으시고'라며, 덕담인지 험담인지 모를 인사를 건네오면, 나는 멋쩍게 웃음으로 화답한다.

백발도 내림이던가. 내 선친을 그대로 닮았는지, 내 머리에는 삼십대 후반부터 불청객인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십대 초반 큰 교통사고로 여섯 달 동안 입원하여 지옥과 천당을 넘나들며,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약을 복용해야 했고 주사를 맞았던 때문인지, 퇴원 후에 갑자기 폭설이 내려 옛 모습을 잃었다. 나이답지 않게 일찍 찾아온 백발은, 나를 애 늙은이(?)로 만들며 심기를 어지럽혀도 마땅한 방도가 없어 그대로 방치하고 지낸다. 가끔 아내와 동행하는 나들이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의 시선이 뒤 꼭지에 꽂히면서, '웬 영감이 젊은 여인과 수상한 관계가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 아내는 속이 상하는지 염색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의중을 떠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할 일없어 심심한 사람들에게, 이상한 방향으로 상상의 자유를 만끽하게 유도하는 것도 정신 건강상 좋은 보시(布施)일 터인데.

내 삶에서 외양이나 내면적으로 움츠림을 유발했던 것이 백발뿐이었는지 되새겨본다. 결코 그렇지 않다. 민감한 문제나 나에게 이롭지 않은 일 앞에서는 주저주저 하면서, '남이 하니까 나도 따라 간다는 식의 의사결정'을 하는 '밴드왜건(band-wagon)' 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며 대세에 따름이라고 치부하던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내가 아니던가. 그러기에 염색이라는 임시 변통으로 겉모습이 달라진다고 해도 근본은 원래대로 이기에, 백발을 숨기고픈 유혹을 접기로 작정한지 오래이다. 높고 낮음 넘치고 모자람을 주는 것도 신의 섭리이려니, 천리(天理)에 순응하며 조화로운 삶의 길을 터득하는 것도 크나큰 지혜로움의 경지에 이름이 아닐까.

가끔 나이 듦과 백발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여러 갈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갈 뿐 가닥을 짓지 못하니 현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오늘도 이른 출근 준비를 하다가 넥타이를 매기 위해서 거울 앞에 섰다. '아직은...'이라고 자위를 하면서 어제 같은 오늘을 맞는 처지인데, 거울 속에서는 낯선 내가 백발의 모습으로 현실의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런데 조금전 설거지를 하는 뒷모습을 봤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한 발짝 뒤에서, '까만 머리'의 아내가 나를 지켜보며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미소의 깊은 뜻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 삶을 동행하며 터득한 동물적인 감각에 의하면 무언가 조짐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변변치 못한 허물들이 실타래 풀리 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감당하기 힘든 궁지에 몰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영악해진 백발은 서둘러 집을 나섰다.

* 백두옹(白頭翁) : 머리털이 허옇게 센 노인. 또한 꽃 전체가 하얀 솜털로 싸여 있다고 해서 '할미꽃'을 이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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