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특집 1] 한가위 세시풍속·유래·문학 속 한가위
[한가위 특집 1] 한가위 세시풍속·유래·문학 속 한가위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5.09.17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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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아침에는 햇곡식으로 메와 떡을 지어 차례를 지내

■ 한가위의 세시풍속

우리는 봄·여름·가을·겨울이란 사계의 변화와 교체가 뚜렷한 동북아시아 기후대에 살고 있다. 일년 사철의 변화하는 실상은 철따라 바뀌어 가는 자연 환경의 미묘한 색채적인 교차에서도 분명하지만 더위와 추위가 느껴지는 기온의 체감(體感)화 현상에서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바뀌고 또 거듭 돌아오는 순환의 자연 원리 속에서 농경을 주업으로 하여 살아온 우리에게는 사계가 자연과 관련된 일련의 생활사의 시간적인 기본 단위로써 이해된다.

이 자연과 시간의 변화하는 리듬인 사계는 진작부터 우리에게는 생활의 어김없는 생물학적인 '달력'이었다. 우리의 의식주의 기본 생활이나 노동의 양상은 모두 이 사계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자연계가 보여주는 변화와 반복은 생활 양식을 주재하고 지배하는 이치나 원리가 되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세시풍속이라 하여 해마다 일정한 시기가 오면 관습적이고 주기적으로 의례적인 행위를 하였다. 이것을 통하여 일년 동안의 긴장된 생활과정에 리듬을 주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는 명절도 대체로 계절에 따라 그 행사 내용이 결정되었고, 그것은 다시 월령에 의하여 달마다의 행사로 세분되었다. 특히 이것은 농사의 개시·파종·제초·수확·저장 등 농경주기와 밀접한데, 추석은 수확의례와 관련이 깊다.

음력 8월의 가장 큰 행사는 보름인 추석이다. 옛적에는 절일(節日)이라는 명칭이 없었으나 추석의 달이 가장 맑고 밝으므로 놀이로 즐기며 감상하는 절일이 되었다. 또 음양학적으로 금(金)의 정기(精氣)가 왕성한 날이므로 노장(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상을 따르던 학자들이 숭상한 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름날이므로 선조의 사당에 잔을 올리고, 또 이 날이 가을의 한가운데에 해당하므로 예문(禮文)에 따라서 상총제(上塚祭, 묘소에 올라가서 지내는 제사)를 지낸다.

또한 8월에는 온갖 것이 성숙하게 되며 중추라 가히 가절이라 할 만한 고로 민간에서는 이 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비록 벽촌의 가난한 집들이라도 예에 따라 모두 술 빚고 닭 잡아 찬도 만들며 온갖 과일을 차려 더도 덜도 말고 언제나 한가윗날같기를 바란다. 이 때는 햇곡식뿐만이 아니라 햇닭도 살이 올라 제일 맛이 있을 계절이므로 조상에게 드리는 예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제사의 격식이 간소화되었지만 제사의 제물은 집안 형편에 맞추어 해야 하고, 밥 한 그릇 국 한 사발로도 조상들에 대해 정성을 다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네 번의 묘제를 지냈다. 이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나중에는 묘제를 두 번으로 줄이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풍속을 채택하여 양(陽)이 생겨나는 날인 동지와 음이 생겨나는 날인 하지에는 사당에서 제사를 모시고, 풀이 돋아나는 때인 한식과 곡식이 익는 때인 추석에는 산소에서 제사 지내어 네 계절을 번갈아 사당과 산소에서 모시게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하면 하늘의 이치를 따져 보아도 본받음이 있고, 세상의 일을 가지고 따져 보아도 어긋남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식보다는 추석에 더 풍성히 묘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그것은 추석 즈음에 행해지는 성묘가 일년 중 제일 중요한 행사임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는 바다.

추석 아침에는 햇곡식으로 메(제사밥)와 떡을 지은 것으로 차례를 지낸다. 이것을 천신(薦新)이라고 한다. 또 이 날 새 옷이나 입던 옷을 깨끗이 손질하여 입는 것을 추석빔이라고 하며, 술을 신도주(新稻酒)라 한다. 추석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송편,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찹쌀부침개도 이웃과 나누어 먹는 음식 중 으뜸이다. 낮에는 남자들이 씨름으로 힘겨루기를 하고, 여자들은 그네를 뛴다. 저녁에는 식구가 평상에 앉아 둥근 달을 보며 담소하고, 특히 전남지방의 남해안 일대에는 부녀자들이 강강술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영남지방에서는 남자들이 "쾌지나칭칭나네"를 추었는데 이러한 세시놀이는 단조로운 생활에 리듬과 질서를 주었다.

조성숙 강사(인문)

신라 유리왕 때, 길쌈놀이를 하며 가배(嘉俳)라고 한 데서 유래

■ 한가위의 유래

"더도 덜도 말고 가윗날만 같아라."
추석 밤, 보름달을 보면서 할머니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다. 이 말은 조선 순조 때 김매순이 열양(洌陽), 곧 한양(漢陽)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책인 『열양세시기』에 나오는 것인데, 추석을 예전부터 '가윗날'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소위 '추석'은 한자어요, '가윗날, 한가위'는 순우리말인데, 후자에서의 '가위'는 '가배(嘉俳)'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먼저 한자어인 추석은 중국 고대 유가의 경전인 『예기(禮記)』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추석을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 것도 가을을 초추(初秋)·중추(中秋)·종추(終秋) 3달로 나누어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순우리말 '가위'는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유리이사금 조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신라 3대 유리왕 때, 서라벌 육부(六部)의 여자를 두 패로 나누어 두 왕녀(王女)로 하여금 각각 한 패씩을 거느리고 매년 음력 7월 16일로부터 8월 14일까지 한 달 동안 베를 짜게 하였다. 마지막 8월 15일 이르러 승부의 판정이 나면, 진 편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회소곡(會蘇曲)'을 부르며 밤새도록 노래와 춤을 즐겼는데 이것을 '가배(嘉俳)'라고 했다.

가위(嘉俳)는 고려 가요인 '동동(動動)'에서도 "8月 보로  아으 嘉俳나리마  니믈 뫼셔녀곤 오날  嘉俳샷다 아으 動動다리"와 같이 嘉俳로 나타나는데, 가위는 이를 음독한 것이다. 남광우(1977)에 의하면 가배는 '갑다(中間, 半)'라는 형용사 어간에 '- '라는 접미사가 붙어 이루어진 명사이다. 즉 '가 (갑+- )'에서 'ㅂ'소리가 약해져 '가 '가 되고, 'ㅸ'이 'w'로 변하여 '가외'로, '가외'가 다시 '가위'의 변화 과정을 겪은 것이다. '갑다'가 '중간, 반'의 뜻으로 쓰였음은 월인석보에 나오는 '가  '와 '(中)반분(半分)'의 뜻을 가진 '가웃'이라는 명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보름날은 한 달의 가운데이고 절반이기도 하므로 이 가설은 타당성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위'에 '큰(大)'의 뜻인 '한'이 붙은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 가운데 중에 가장 가운데 날'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혹자는 가배를 진 편에서 이긴 편에게 잔치를 베풀게 되므로 '갚는다'는 뜻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유추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프로그램 상 고어가 깨져서 한글문서 파일을 첨부합니다. 참고하세요.

당나라 문종 때 입당했던 승려 원인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산동 지방에 머무르고 있는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보고 적은 대목이 있다. "8월 15일의 명절 놀이는 오직 신라에만 있는데, 그 곳 노승의 말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이 날이 발해와 싸워 이긴 기념일이었기 때문에 그 날을 명절로 삼고 일반 백성들이 온갖 음식을 만들어 먹고 가무로써 즐겁게 노는 것인데, 이 절 역시 신라 사람의 절이므로 그 고국을 그리워하여, 8월 15일 명절 놀이를 한다."가 그것이다. 8월 15일이 발해와 싸워 이긴 날이라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배보은(대학원 국문 박사과정 3차)

일년 365일 중 단 하루, 꿈 같고 생시 같은 축제

■ 문학으로 읽는 한가위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이때부터 타작마당에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들뜨기 시작하고-남정네 노인들보다 아낙들의 채비는 아무래도 더디어지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식구들 시중에 음식 간수를 끝내어도 제 자신의 치장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 바람에 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놓은 새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토지』, 1권, 39쪽)

장편 대하소설 『토지』 전 5부 16권 중 1권의 처음은 이렇게 추석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갑오년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 을미왜병 등이 휩쓸고 간 1897년 소설 속 한가위로부터 백 년 넘은 세월을 건너 우리는 2005년 한가위를 앞에 두고 있다. 길고 긴 시간만큼이나 그 뜻도 풍속도 빛 바래서 추석은 더 이상 "마을의 남녀노유,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강아지나 돼지나 소나 말이나 새들에게,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까지 포식의 날"(『토지』)로서의 뜻을 누리지 못한다.

결핍 없는 세대인 우리는 풍요를 감상하는 법마저 잊어버린 지 오래다. 한 번도 절실하게 배고파 본 적 없고, 제대로 기다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축제 속에 숨겨진 삶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 늘 가난했고 고단했던 나날살이의 시름을 잊고 가득 찬 보름달, 넘쳐나는 음식, 사람들의 웅성거림… 상상적 풍요의 화려함 속에서 사람들은 일년 365일 중 단 하루, 꿈 같고 생시 같은 축제를 즐겼던 것이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울듯이 축제도 우리의 한 생애도 절정의 그 순간부터 이미 기울기 시작한다는 것을 작가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을 빌어 우리에게 말해 준다.

풍요하고 떠들썩하면서도 쓸쓸하고 가슴 아픈 축제, 한산 세모시 같은 한가위가 지나고 나면 산기슭에서 먼, 먼 지평선까지 텅 비어버린 들판은 놀을 받고 허무하게 누워있을 것이다. 마을 뒷산 잡목 숲과 오도마니 홀로 솟은 묏등이 누릿누릿 시들 것이다. 이러고 저러고 해서 세운 송덕비며 이끼가 낀 열녀비며 또는 장승 옆에 한두 그루씩 서 있는 백일홍나무에는 물기 잃은 바람이 지나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겨울의 긴 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같은 책, 43쪽)

좋은 작품은 이렇게 우리가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진실에 대해 말해준다. 누군가는 음력 팔월 한 가위 같은 나이 사십에 "막걸리 한 잔, / 빈 촌 막바지 대폿집 / 찌그러진 상 위에 놓고 / 어버이의 제사를 지내"(천상병, 「불혹의 추석」)기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네 삶의 진짜 모습인 모양이다.

김해연 강의전담교수(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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