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특집 2] 내 어릴 적 추억은…
[한가위 특집 2] 내 어릴 적 추억은…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5.09.17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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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고향냄새 - 김형철 교수(국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적어도 어린 시절 추억 속에서의 추석은 그랬던 것 같다.

맑은 가을 하늘이, 누런 들판이, 한가로이 서 있는 허수아비가, 풍성한 과일들이, 지천으로 날아다니는 메뚜기, 잠자리가, 밤의 귀뚜라미 소리가, 휘영청 밝은 달이, 말쑥한 옷 차림새가, 특히 넉넉한 인심이 그랬다.

햅쌀, 깨, 콩 등의 곡식과, 대추, 배, 감, 밤 등의 과일과, 닭, 토끼, 염소 등 가축을 머리에, 어깨에, 손에, 지게에, 이고, 메고, 들고, 지고 장에 간다. 늙은이와 어린애들만 빼놓고 모두가 추석 대목 장에를 간다. 골짜기마다에서 사람들이 나와 한길에서 합쳐지니 이내 사람 천지가 된다. 애들은 대개 참새를 쫓거나, 소꼴을 베는 등 집안일을 거드는데, 어쩌다 장터 행렬에 끼이게 되면 행운이었다.

시골의 추석 대목 장터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사람들은 곡식, 과일, 가축 등을 난전에 내다 팔아, 가게에서 '조기, 돔배기, 고등어, 오징어, 꽁치' 등 생선류와 화장품, 비누 등 잡화품을 주로 산다. 사돈네 팔촌까지의 안부 묻는 소리, 물건 흥정하는 소리,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시비하는 소리, 온갖 소리들로 장터는 왁자지껄하다.

소고기 국밥집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다니다가, 사람들 사이에 비집고 앉아 먹는 소고기 국밥맛 - 달랑 무김치 하나 반찬이지만 얼마나 달던지. 박하사탕, 아이스케끼, 엿 등이 선망의 간식거리였지만, 소풍이나 운동회 때가 아니면 먹기 힘들었다.

파란 고무신 한 켤레 챙기면 그 해 추석은 괜찮은 편이다. 형제들이 많기 때문에 맏이가 아니면, 새 옷이나 새 신을 사기가 힘들던 시절이었다. 여름 내내 검정 고무신 신고 지내다가(그것도 아까워 냇가에 씻어 말려두고 맨발로 다니기 일쑤였다), 낡으면 실로 꿰매어 신고 다녔다.

추석 당일에는 차례 지내고, 제사 음식을 이웃에 가져다 주는 것이 큰 일이었다. 할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동네 어른들이 많이들 찾아오셨다. 잔심부름도 임무 중에 하나였다.

낮에는 뒷산 소나무에서 동네 젊은 사람들이 그네 타는 모습을 구경했다. 용기도 없었지만, 애들에게는 좀처럼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직접 타보지는 못했다. 그 때 그네 한 번 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성묘 때나 한번 찾아가는 고향. 지금은 고속도로에, 공장 부지에 편입되어 고향집 주위의 산과 시내는 생명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객지 사람들이 서로가 타인으로 살고 있으니 넉넉한 인심들도 사라졌다. 고향과 함께 추억도 잃은 탓일까? 팔월 한가위 보름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 볼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고향 냄새가, 그곳의 사람 냄새가 그립다.



■ 추석전야(秋夕前夜) - 조경석 실장(과학영재교육원)

곧 추석이다. 추석하면 먼저 둥근 달과 고향이 떠오른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에게 추석은 고향 하늘 위로 둥그런 보름달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어른들은 동네 재실에 모여서 고시랑고시랑 추수걱정을 나누고, 어린 것들은 새실대며 햇밤을 까먹던 추억어린 한가위가 떠오른다.

요즘은 도시가 고향인 학생들이 많겠지만 쉰 줄이 넘는 사람들 대부분은 시골이 고향이다. 내 고향도 시골이다. 추석이 되면 햅쌀로 갖가지 떡을 한다. 지금처럼 군것질거리가 다양하지 못하던 그 때는 떡이 맛있고도 드문 먹거리였다.

나에게는 떡으로 빚어졌던 공포의 추석이 있다. '더도 덜도 말고 가윗날만 같아라'던 풍요로웠던 추석보다 무서워서 달음박질을 했던 한 기억이다. 초등 3학년 때였다. 그 당시만 해도 늑대가 마을에 심심찮게 나타나던 시절이다. 마을에서 고개하나 넘어 면소재지에 있던 방앗간에 집안 숙모님들과 어머니께서 추석 떡을 하러 가셨다. 저녁이 다 되어도 어머니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아마 각 종류의 추석 떡을 하는 사람들이 밀려있어 그랬을 것이다.

나는 떡을 빨리 먹고 싶어서 핑계인 어머니 마중을 할머니로부터 허락받았다. 동네 좌측 끝집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우리 밭보다 멀리 가지 말 것을 약속하고 말이다. 그런데 더 빨리 만날 욕심에 조금씩 오르다보니 고개를 넘어버렸다.

추석전야! 둥근 달이 떠오르고 있다. 방앗간에 가서 확인하니 어머니께서는 집으로 가셨다는 것이다. 아차! 길이 엇갈렸다. 지름길인 고개를 넘는 것만 생각하고 낮은 산비탈과 논 사이로 빙 돌아 난 자드락길로 오신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할머님 말씀대로 고개와 자드락길이 나뉘는 밭 근처에서 기다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발길을 돌렸다. 달빛이 있어도 숲과 공동묘지가 있는 고개로 돌아가는 것은 무서워 포기하고 나도 자드락길을 택했다.

한참을 걸어 동네 불빛이 막 보이려는 동구 밖 으슥한 모퉁이를 도는 순간이었다. 왠 짐승이 길을 가로막고 앉았다. 우리 개 누렁이인 줄 알고 반겼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순간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마침 들고 간 손전등으로 비춰보니 늑대였다. 머리끝이 쭈뼛쭈뼛 치솟았다. 나도 모르게 밤알만한 돌 한두 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후려 던졌다. 어린 나이의 돌팔매가 뭐 대단하겠냐마는 어디를 맞았는지 '캥'소리와 함께 길이 열렸었다. 단숨에 집까지 내달아 땀범벅이 되어 집 대문을 두들겼다. 1000m가 100m같았다. 둥근 달빛에 달리는 길이 흰 가래떡처럼 더 훤하게 드러난 것도 같았다.

■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 문병순 교수(중국)

높고 푸른 하늘보다도 저 멀리 드넓게 펼쳐진 황금 들판을 보면서 가을이 영글어 감을 느낄 수 있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초등학교 때의 몇 가지 추억이 떠오른다.

나의 외가 부근 산에는 밤나무가 무척 많았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날밤을 오독오독 씹어 먹기를 좋아하는 손자를 기억하시고 밤 따러 오라고 외할머니께서 연락을 하신다. 밤나무 옆에는 감나무도 몇 그루 있었다. 서리가 내릴 때 익는다는 외할머니의 말씀을 뒤로하고 몰래 따서 한 입 깨물어 보고 떫어서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그대로 내버렸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밤 따는 재미는 너무 좋았다. 아버지가 밤나무에 올라가셔서 나무를 흔들면 밤송이와 알밤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물론 아버지는 밤송이 폭격(?)을 피하기 위해 바가지로 머리를 무장하셨다. 잘 익은 밤들이 바닥에 수북하게 쌓이면, 나와 동생은 신이 나서 줍는다. 이런 유년시절의 추억이 담긴 나의 외가는 이미 폐허가 되어 모 방송국의 '전설의 고향' 촬영장소로 활용되었다니 이제는 어디로 밤을 따러 가야 할까?

한 번은 어머니와 함께 송편을 빚어 본 적이 있다. 손에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감촉이 너무 좋았다. 어머니를 좇아 열심히 해 보지만 내가 만든 송편이 예쁠 리 없었다.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내 송편을 보시고 어머니께서 이다음 장가 갈 때 못생긴 색시를 얻는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렸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 후로는 송편을 빚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추석 때 꼭 챙기시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가까운 이웃 어른들께 고기를 보내시는 것이었다. 고기를 보내는 것이 지금과 무슨 차이가 있으랴만, 이전에는 지금과 같은 대형 마트가 없었다. 고기를 사려면 꼭 정육점에 가야 했는데, '고기 심부름'은 구입에서 배달까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몫이었다. 신문지에 둘둘 말려있는 고기를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자전거에 싣고 한 집 한 집 배달을 했다. 평소에 고마웠던 분들이나 혼자 사시는 분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라 하시면서, 인사는 정중하게 해야 된다고 강조하셨다. 요즘 TV 광고처럼 핸드폰으로 갈비세트를 사진 찍어 전송하는 시대에 비하면 정말 소박하기 그지없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라는 동요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면서 계수나무도, 토끼도 정말 서쪽나라로 멀리 가버렸다. 나의 어릴 적 추억도 차츰 서쪽나라로 멀리 가버리고 있는 것 같다.

오늘따라 음력 팔월대보름을 바라보며 나에게 당부하신 어머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세상에서 소금과 같은 사람이 되거라." 그때는 무슨 뜻이지 몰랐다. 지금 내가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머리 숙여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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