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특집 3] 가 보자! 만날제!
[한가위 특집 3] 가 보자! 만날제!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5.09.17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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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한 모녀상봉이 전설이 내려오는 만날고개로'
"전설 속 주인공처럼, 만나고 싶은 사람 여기서 만나 봐요"



오는 9월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간 마산시 월영동 만날고개에서 마산의 전통민속축제인 을유년 만날제 행사가 열린다.

사연을 간직한 만날고개는 예곡동과 월영동의 경계에 있어 내서면 감천곡으로 통하는 고갯길이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는 이 고개를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음력 팔월 열이렛날(추석 이틀 후)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1981년 향토문화진흥회에서 처음 축제를 시작해서 지금은 '시민 축제' 차원에서 매년 팔월 한가위 이틀 뒤부터 이틀 동안 고갯마루축제 '만날제'가 베풀어지고 있다. 예전에 비해 축제에 참여하는 연령층이 다양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마산의 대표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 학교 후문에서 산복도로 쪽으로 쭉 올라가 육교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서 주택지를 벗어나면 볼 수 있는 곳이 만날고개다. 장승과 돌로 된 만날제 표지석이 있는 곳에는 만날고개 약수터가 나온다. 수도꼭지를 4개나 달아둘 정도로 시민들이 애용하는 샘터인 것 같아 보였는데 수질 관리는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무학산 등산을 하면서 만날고개를 찾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휴식처로서의 활용을 위하여 마산시측에서는 현재 이곳을 공원화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는 만남을 주제로 한 잔디광장, 전망대, 야외상설무대, 산책로, 윤진사 고가 및 모녀상봉상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렇게 공원이 조성된다면 아마 만날제 행사도 좀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을 지나 등산을 하는 시민들이 많다. 지나가다 공사현장을 지켜보고 서 있는 사람들도 있다. 2007년 완공 예정이라고 하는데 하루 빨리 완공되어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공원과 함께 깨끗한 물도 하루 빨리 나오게 되었으면 한다.

만날제는 주변의 축제장터의 흥을 돋우는 길놀이 풍물씻김 놀이를 시작으로 마산 시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기원제, 만날제향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으로 타고식이 진행되는데 큰북을 다섯 번 두드린다.

첫 번째는 천지지신에게 고하고, 두 번째는 오광신전, 세 번째는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의 오대산신에게, 네 번째는 사해용왕 그리고 다섯 번째는 선대조상에게 만날제 행사를 고하는 의미로 큰북을 다섯 번 울리게 되며 이는 마산의 발전과 무대평안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시민축제로 거듭나기 위해 시민과 함께 하는 다양한 행사들도 병행되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행사들도 펼쳐진다. 만날고개에 얽힌 설화를 재구성한 고전극을 보며 이곳의 전설도 알 수 있고 판소리, 민요창, 전통무용 같은 다양한 우리의 민속예술도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보고만 있는 것도 아니다. 민요경창 대회와 한복맵시 자랑대회는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행사이다.

그리고 요즘 보기 힘든 대장간, 방앗간 등이 있는 민속마당을 구성한다. 여기에는 석장승, 목장승, 솟대 등을 이용해 민속 분위기를 더하고 민속 공예품을 전시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허수아비 제작 공모전 출품작도 전시한다고 한다.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흥겨운 축제인 만날제 행사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에서 시작되었지만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이어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바쁘게 살아가며 만남을 소홀히 했던 우리들에게는 좋은 깨달음을 줄 것이다.

<경남대학보사 하현영 기자>

만날 고개에 얽힌 전설

옛날 마산포에 이씨 성을 가진 양반집이 있었는데 일찍이 바깥양반이 죽고 편모 슬하에서 삼남매가 자라고 있었다. 큰딸이 열일곱 살, 둘째딸이 열서너 살이라 했고 막내아들이 열 살 남짓이었는데 기둥인 어머니가 질병까지 얻어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한편 고개 너머 감천곡에는 돈으로 진사벼슬을 얻은 천석꾼 윤씨가 살고 있었다.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반신불수에 벙어리라 나이 서른이 되도록 혼처가 나타나지 않아 속을 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산포에서 행상을 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바로 이씨 집 이웃에 살아 이 집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아주머니는 이씨 집안의 어머니를 찾아 큰딸을 감천 윤진사집과 혼인만 시키면 전답 수십 마지기와 많은 금전을 받을 수 있으니 가세도 되살리고 돈으로 병도 구완할 수 있다고 혼사를 권유했다. 그러나 사위될 사람이 반신불수 벙어리란 소리에 대경실색해 비록 구차하게 살지언정 딸은 그렇게 결혼시킬 수 없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행상 아주머니는 며칠 후 큰딸을 직접 만나 감언이설로 설득하니 큰딸은 집안과 어머니의 병환을 구완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혼사가 이루어지도록 작심하고 어머니를 달랬다. 겨우 어머니를 달래고 눈물로 헤어진 후, 이씨 집 큰딸은 감천 윤진사집으로 시집을 갔지만 시집살이의 고초는 말이 아니었다. 반신불수의 신랑은 아예 남자구실을 못하는데도 며느리더러 손자도 못 낳는다며 시댁의 구박이 심했다. 그래도 새댁은 시부모와 남편을 잘 모셨는데 시집 온 지 3년 만에 친정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친정에 와 보니 시집갈 때 받은 전답과 돈으로 가세도 좋아져 있었고 어머니의 건강도 나아져 더 바랄 것이 없어 보였다. 막상 시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자 딸은 도저히 시집살이할 엄두가 안 난다며 그냥 친정에서 살면 좋겠다고 여쭈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호통을 치며, "여자는 출가외인이라 한 번 시집가면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며 시댁으로 되돌아가게 했다.

그러나 만날고개에서 아내가 오길 초조하게 기다리던 남편은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는데 '집을 도망쳐 새 삶을 찾아라'는 유서까지 써 놓았다.

이리하여 스무 살에 청상과부가 되어 수절하면서 몇 해가 흘러갔지만 자나깨나 친정 생각뿐이었다. 하루는 안부나 전해 듣고자 만날고개로 나갔는데 그 날이 음력 팔월 열이렛날. 마침 그 날 마산의 친정어머니도 시집간 딸의 안부를 묻고 싶어 사람의 왕래가 많은 만날고개에 올랐으니 우연치고는 희한하게 맞아 떨어져 모녀가 얼싸안고 울었다고 한다. 다음 해에도 모녀는 이 날이 되면 꼭 이 만날고개를 찾았으니 이 이야기가 입으로 전해져 고개이름도 아예 '만날고개'로 불려지게 되었고, 사람들도 이 날이면 만날고개에 올라 한동안 못 보았던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한다고 한다.

<정리 : 경남대학보사 하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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