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합니다! 교육수료를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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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5.07.0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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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학과 병영체험 소감문… 미래 장교로서 자부심을 가지는 소중한 경험


‘39사단 병영체험’을 다녀와서
이가민(군사학과 · 1, 여)


군사학과라는 학과 특성상 여러 가지 군사에 관련된 학문들을 배워왔다. 하지만 언제나 그것을 이론적으로만 알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군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군사훈련을 받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평소에 아무리 이론적인 것만 배운다 한들 실질적인 것들을 알지 못한다면 쓸모가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학생들의 생각을 교수님이 헤아려주셔서 하계 방학 중에 병영체험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병영체험을 가기 전날 평소에 대중매체에서 보았던 군 생활이 떠올라 기대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군대’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는 딱딱한 규율과 명령이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걱정 속에 어느덧 6월 20일 병영체험 날이 되었고 39사단에 가기 위해서 중간 집결지에 모여 학과 사람들과 병영체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대부분이 나와 같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가는 병영체험이었다. 스쿨버스가 도착하고 드디어 39사단 내로 진입하자 여러 군사 건물이 보였다. 마침 39사단을 방문했을 때가 설립기념일이어서 우리는 맨 처음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우리는 행사 내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군인들이 완벽하게 줄을 지어있는 모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행사를 진행할 때 우리는 박수와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가 끝나고 우리는 입소식을 마치고 전투복과 전투모를 착용하고 교육생인 우리에게 알맞게 짜여진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생활하였다. 훈련병이 아니라 교육생의 신분으로 왔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평소처럼 딱딱하거나 엄격하게 한 것이 아니라 군대에 대한 것들을 체험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재미있고 간략하게 교육이 이루어졌다.

병영체험 중에 많은 교육을 받았지만 프로그램 중 기억에 남는 훈련은 각개전투 훈련과 총검술이었다. 각개전투란 신교대의 기초군사교육의 한가지로써 전시에 취할 수 있는 모든 기초적인 동작에 관한 교육이다. 각개전투는 주간 각개전투와 야간 각개전투로 나뉘어져 있어서 이 두 가지 훈련은 같은 각개전투이지만 다른 훈련을 받는다. 주간 각개전투 훈련을 할 때에 더운 날씨와 소총, 철모 때문에 포복을 할 때에나 포복을 하면서 장애물을 넘을 때 매우 힘들었다. 또한 야간 각개전투는 야간에는 자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해서 세심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힘들었다. 하지만 힘든 훈련이기에 그 훈련을 마쳤을 때의 보람됨과 추억은 말할 수 없었다.

또한 총검술을 배웠는데, 총검술이란 북한의 창격술에 대비하여 우리 남한에서 만든 무술로써 북한의 창격술은 공격이 목적이지만 우리의 총검술은 방어를 주목적으로 하며 북한의 창격술은 몸에 너무 소총이 떨어지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특징을 가진다. 우리는 총검술의 12개 동작 중 시간관계상 몇 가지 동작만 배웠는데 배우면서 우리의 총검술은 그 동작이 부드러우면서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외에 기억에 더 남는 것이라면 응급법이다. 응급법을 교육할 때 모두들 귀담아 듣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 놓여질지 모르며 언제 부상이나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 특히 전시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자신이나 남이 의무병이 필요할 정도로 다쳤을 때 이외에는 그냥 있는 것보다는 그에 알맞은 응급처치를 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응급법을 배우는 것이다. 응급법 교육에는 지혈법, 운반법, 인공호흡법을 배웠다. 지혈법으로 상처의 크기나 부위에 따라 각기 다른 지혈법을 사용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운반법은 2인과 1인 운반법이 있는데 1인 운반법을 배워 파트너와 함께 실습을 했다. 응급법 중에서 가장 아이들의 관심을 주목시킨 것은 인공호흡이었다. 나도 꽤나 관심이 가서 직접 마네킹에 인공호흡을 해보았는데 보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 하는 것이 꽤나 어려웠다.

이처럼 우리는 병영체험을 통해서 군사학이라는 이론에 실무적인 것까지 배울 수 있었다. 비록 짧은 기간에 배운 것들이라 모두 미숙하고 숙달되지 못했지만 충분히 군 생활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떤 군대예절을 가지고 상관과 자신이 지휘하는 병사들과 생활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질적으로 몸으로 체험함으로써 더욱 깊게 각인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내년에는 우리의 후배들과 이 병영체험을 함께 가게 된다. 그 때는 조금 더 자세하고 풍부한 군사적 지식을 가지고 병영체험을 가서 더욱 많은 것을 배워올 것을 내 자신에게 약속해본다.



병영체험 후기

강동원(군사학과 · 2)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 우리 경남대 군사학도들은 그 태양에 맞서기 위해 병영체험에 나섰다. 앞으로 육군 장교단의 일원으로서, 병사들의 영내생활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므로써, 임관 후 소대장이 되어 병사들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배울 중요한 일정이었다.

하필이면 우리가 입소하기 전에 전방에선 불의의 사고가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훈련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우스겟소리로 교수님께 말하면서 긴장을 풀었다.

육군 제 39보병사단에 도착한 우리는 뜻깊게도 사단창설 50주년 행사를 볼 수 있었다. 사열대에서 진행하는 행사와 부대시설에 우리 학생들은 사뭇 긴장하는 듯 했다. 허나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난 이미 군인의 자녀로서 군내의 시설물과 군인들을 많이 경험한지라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첫날 짐을 내려놓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얼룩무늬 전투복과 전투화였다.

사람이 형식이 갖춰지면 내용도 갖춰지게 된다고 하였는가? 우리는 전투복을 입음과 동시에 민간인이 아닌 군인으로서 정신무장도 다시금 바꾸게 되었다. 신병교육대장님께 입소 신고를 함과 동시에 우리의 첫날은 시작되었다.

나는 자치 중대 제1소대장으로 임명이 되었다. 2년여 후 소대장이 될 나에게 뜻깊은 임무가 주어져서 기쁨과 동시에 책임감 또한 강해진 것 같았다. 부대밥을 먹고 저녁엔 특별한 일없이 22시에 점호를 하게 되었다. 대학생활로 인해 매일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자던 내가 22시에 취침을 하니 잠이 잘 오질 않았다.

이튿날 06시에 방송에선 기상과 동시에 아침점호를 하라고 방송이 울렸다. 언제 잤는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알 수 없음과 동시에 비몽사몽으로 중대막사 앞 사열대에서 점호 신고를 하고 우리의 이튿날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 어깨엔 어느덧 푸른 녹색견장이 달렸고, 소대장 완장을 차게 되었다. 비록 동기생들과 후배들이긴하나 내 소대원들이라 생각하니 왠지모를 압박감과 함께 다시 한 번 책임감이 온몸에 전율했다. 오전에는 제식동작을 배우면서 차렷자세와 쉬어자세, 그리고 거수경례를 배우면서 점점 군인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오후엔 안보교육을 배우면서 우리의 주적이 누군가를 확연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석식 전 중대장님과의 면담을 통해 중대장님의 배려로 이등병들과 상담도 하게 되었고, 병장들과 간담회도 가졌다. 이 시간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선임은 후임을 가르칠 때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행동이냐 말이냐? 말로서 가르치는 게 정말 힘들면서도 가장 멋진 일이라고 그랬다.

다음날 우리에게 지급된 총기로 총검술을 배웠다. 탄알이 떨어졌거나 급박한 상황일때 백병전을 치룰 시에 중요한 총검술을 직접 배우게 되니 감회가 남달랐다. 앞에총! 세워총! 찔러총! 등 각종 동작을 배우고 오후엔 경계를 배웠다. 이날 야간 불침번을 하므로써 점점 병영생활에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또다시 다음날 처음으로 몸으로 하는 각개전투. 기본적인 것이지만 직접해보니 팔꿈치가 긁히고 땀도 삐질삐질 나는 것이 힘들다기 보단 내 정신이 훈련을 즐기는 것 같았다. 오후엔 구급법을 배웠다. 소대원들이 갑자기 불의의 사고가 날 때 소대장으로서 응급처치를 해야 될 것 같은 생각에 사뭇 진지하게 들었다. 중간에 KBS방송국 아나운서와 인터뷰도 했다.

금요일에는 이번 병영체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유격이 있었지만 2학년들은 학과장님의 중요한 학술 세미나 초청으로 서울로 갔기에 받을 수 없었다. 더욱이 누구보다 이 유격을 기다렸기에 나는 아쉬움이 끝이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저명한 인사들을 만나고 우리 경남대 군사학과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기에 아쉬움을 달래고, 또한 고등학교 모교 총동창회장이자 이 단체의 전회장이셨던 안병호선배님을 뵐 수 있어서 뜻깊었다. 게다가 전략론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의 저자인 온창일교수님도 뵐 수 있어서 좋았다. 그만큼 뜻깊은 시간이기에 유격의 아쉬움은 다음 학군사관후보생이 되었을 때나 아니면 3사생도 때나 받기로 했다.


쉴 틈없이 하루하루를 달려온 우리는 토요일 아침일찍부터 사단 영내 8Km행군을 했다. 지도교수님께서 “걷는 게 뭐가 힘들겠냐고 생각할지 몰라도 행군에서 분명히 낙오자가 생길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말씀하셨다. 나역시 속으로 “군장도 메지 않고 그냥 걷는 건데 설마 힘들겠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걸을수록 단순함에 지치고, 또 같은 길을 걷고 하다보니 순간 정신이 빠져나가면서 대열을 이탈하기도 했다. 교수님의 말씀대로 낙오자도 생겼다. 행군을 끝으로 우리가 기초적으로 받을 훈련은 다 수료했다.

하루하루가 일년처럼 느껴지고 일주일이 하루처럼 느껴지는 모순적인 병영체험이 아쉬움에 다다르고 일요일이 되었다. 오전에 종교행사를 안국사라는 사단절에서 가졌는데 부처님 불상을 보고 반배와 합장을 하면서 세 가지를 짧은 순간에 빌었다. 첫째는 한겨레였던 이 나라의 통일을, 둘째는 앞으로의 내포부와 함께 훌륭한 장교로 거듭나기보단 묵묵히 주어진 임무에 성실히 임하는 장교의 한사람이 되길, 마지막 셋째는 우리 군사학과생들 모두가 장교단일원으로 우리나라 국방의 주역이 되길 크나큰 소원을 빌었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뜻깊은 체험을 해서 좋았고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를 되새기게 되었다. 또한 오만촉광이 빛나는 소위 계급장보다 더 무거운 것이 녹색견장이란 걸 알았다. 지휘관으로서의 권한과 권위를 내새우기 이전에 책임감이 강한 소대장이 될 것을 내 자신과 약속했다. 또한 21년간 철없이 자랐고 아버지가 군인인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이젠 아버지로서 자랑스런 군선배로서 존경할 것이다.

지금쯤 내 또래들은 머리에 염색도 하고, 머리도 기르고, 귀도 뚫으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반면 나는 내 자신스스로 절제하고 또래에 맞지 않는 성숙함을 가졌다.

이번 병영체험을 토대로 더욱 절제된 생활 속에 또 한 단계 성숙한 달라진 내 자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대한민국 장교가 될 사람이기 때문에 남과 같을 순 없기 때문이다.

“의사는 진료를 하면서 하얀 가운을 입고

판사, 검사들은 재판을 하면서 검은 법복을 입지만

죽어서는 모두 다 검은 정장을 입고 묻히게 된다.

세상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어서는 모두 자신의 직업을 버리게 되지만....

하지만 군인은 죽어서 관속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고 묻히게 된다...

군인이란 직업은 죽어서도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군인이다..... 나는 대한민국 군인이다......“



‘병영체험’ 소감문


정총교(군사학과 · 2)


2005년 6월 20일 오전 9시 39사단 정문을 들어서면서 7박 8일의 병영체험이 시작된다는 느낌이 확 밀려오고 있었다. 정문에서 보이는 헌병들과 부대 건물과 군 관련 표지판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이제 진짜 병영체험을 시작하는구나 하는 설레임과 처음으로 접하게 될 군 생활에 대해 조금 걱정이 됐다.

부대창설 50주년 행사로 인해 우리들은 종합연병장에서 식을 참관하였다. 군대라는 특성으로만 느낄 수 있는 절도와 행렬, 그리고 거수경례로, 시작부터 군대의 틀에 맞추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다.

식이 끝나자 우리는 버스에서 짐을 내려 7박 8일동안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할 보금자리인 내무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무실에 들어서니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내무실의 침상이 관물대와 침구류, 전투복과 함께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짐을 다 풀기도 전에 파란색에 조교란 글자가 새겨진 모자를 쓴 분이 들어와서는 실을 주면서 자신의 이름과 교번이 적혀있는 것을 전투복에 바느질하라고 했다. 실로 중학교 때 가정수업 이후로 처음 하는 바느질이었다. 어색한 바느질에서부터 우리의 병영체험은 시작되었다. 나는 정총교라는 나의 이름과 1-2-001 이라는 교번을 전투복에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항상 바느질 같은 여성적인 느낌의 일은 모두 어머니께서 하셨기 때문에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났다. 바느질이 채 끝나기도 전 한 중사님께서 들어오시고는 나에게 중대장 교육생은 입소식 준비를 해야한다며 바느질을 빨리 끝내기를 요구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중대장 교육생이라는 명판 하나로 나는 모든 일을 다른 교육생 동기들보다 항상 5~10분정도 먼저 해야했다.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입소식 장소로 향했다. 처음 신는 군화는 왜 그렇게 무거운지 그리고 이 더운 여름에 이런 두꺼운 전투복을 입어 땀은 왜 그렇게 흐르는지…. 입소식 때 중대장 교육생인 나는 젤 앞에서 지휘자가 되어 식의 순서를 대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64명의 교육생들에게 명령하는 지휘자였다. 식이 끝나자 나의 목은 거의 쉬어있었다. 이후 총기수여식을 하고 첫날 하루는 부대소개와 부대견학으로 마쳤다.

그러나 일과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군대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점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각 소대장교육생과 분대장교육생들은 각자의 멘트를 외우고 나도 나름대로의 멘트와 점호방법을 익혔다. 그렇게 첫날 저녁점호는 끝이 났고 모두들 군대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아침6시에 음악소리와 함께 모두들 잠든 눈을 뜨고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역시나 나는 남들보다 더 빨리 준비해 아침 점호를 위한 방송을 해야했다. 아침점호는 저녁점호와는 다르게 연병장에서 실시하였다. 모두들 잠들어 보이고 피곤해 보였다. 둘째날 교육은 군대의 경례 등의 예절과 제식훈련이었는데 제식훈련은 명예복을 위해서 모두들 열심히 받았으며 총을 이용한 경례방법 등 새로운 것을 접하였다.

총검술과 경계를 배웠던 셋째날은 숙달된 조교들의 총검술 실력에 모두들 환호의 박수를 쳤으며, 북한군의 창격술과 우리 육군의 총검술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경계는 야간에 행하는 중요한 하나의 업무로 포로를 잡는 방법도 배웠으며, 경계에서 교대까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육체적으로 피곤한 날은 넷째날 부터였다. 각개전투를 통해 이동기술을 배웠는데 땅에서 기어다니려고 하니 팔꿈치가 까지고 무릎에 멍이 들며 장애물에 상처를 입는 환자들이 발생했다. 그러나 모두들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라는 구령으로 열심히 뛰어다니고 연습했다.

다섯째날에는 2학년 교육생들이 명예복으로 환복하여 국방회관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여 안타깝게 훈련의 꽃인 유격을 받지 못하였다.

훈련이 있는 일정으로는 마지막날인 여섯째날 우리는 8KM를 행군하기 위해 아침일찍부터 준비하였다. 철모를 쓰고 탄띠에 탄약대와 수통, 판초우의를 장착하고 전투화를 신고 소총을 어깨에 메고 연병장에 준비했다. 나는 젤 앞에 기수교육생과 같이 위치하여 뒤에 따르는 교육생들을 이끌었다. 잠깐에 휴식시간에도 휴식을 취하지 않고 환자를 파악하고 다른 교육생들을 챙기느라 힘들었지만 앞으로 미래 장교가 될 장교후보생으로서 보람찼던 것 같다. 여자들 중에 전투화에 익숙치 못하여 물집환자가 많이 발생하였으나 나를 포함한 65명 전원은 행군을 무사히 완주하였다. 그리고는 서로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었다. 오후에는 조교분들과 운동시간을 가졌으며, 일곱째날에는 종교행사를 통해 훈련병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을 체험했고 훈련병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지를 참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런 기본적인 교육훈련 외에 나와 소대장 교육생들은 노계봉 중대장님께서 신경써 주신 덕분으로 이등병과 면담을 해보게 되었었는데 미래 소대장이 되면 하여야 되는 일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으며 병장들과도 간담회를 통해 현 군대가 어떻게 변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또한 항상 장교의 자부심을 가지게 해주시고 교육생들의 건강을 챙겨주시며 재미있고 유익하게 병영체험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노계봉 중대장님과 각 교관으로서 그리고 담당소대장으로서 교육생들의 아버지와 같으셨던 우동오, 박창배, 이석원, 최정훈, 전풍기 교관님들과 그리고 형과 같이 격려하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조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마지막 날, 입소식 때와는 다르게 익숙해진 전투복차림과 거수경례, 절도로 퇴소식을 마치고 교관님들과 조교분들과 악수와 경례를 나누고 모두들 버스를 타고 39사단 정문을 뒤로 하고 7박8일의 병영체험을 마쳤다.

“신고합니다. 1번 교육생 정총교 외 64명은 2005년 6월 27일부로 병영체험 교육 수료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마지막 수료식 때 한 나의 멘트이다. 나를 포함한 65명의 군사학과 교육생들은 한명의 낙오자 없이 수료했으며 7박8일의 그 일정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첫 군대와의 인연으로 그리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었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굳건한 국가관과 절도있는 걸음과 미래의 장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군전문인으로서 앞으로의 과제에 도전해야 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군사학과 파이팅!

39사단 병영 체험을 마치고...

김상협(군사학과 · 1)


19일 일요일 저녁, 창원에 있는 39사단에 병영체험을 하기 위해 마산으로 향했다. 방학이라 같은 군사학과 동기들이나 선배님들이 다 기숙사를 비웠고, 집으로 내려가 버려서 마땅히 잠을 잘 만한 곳이 없어 학교 앞 찜질방을 이용했다. 하루가 가고 20일날 아침, 샤워 후 잠시 시간이 남아서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28사단의 GP에서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 병영체험을 가는데 군대 분위기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앞으로 일주일간 걱정이 되었다. 집합시간 집합장소에 모여 버스를 타고 39사단으로 갔다. 생각보다 외딴곳이 아닌 시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문을 들어서고 버스에서 내리니 훈련병들이 사복을 입은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하긴 훈련소에 처음가보는 우리도 그들이 낯설었으니 말이다.

부대 창설 50주년 기념식에 참관한 뒤, 바로 입소식을 가졌다. 역시 군대에서 하는 행사라 절도 있고, 정확하게 입소식이 진행되었다. 입소식후 각자 내무실에서 준비된 전투복을 입었다. 더운 날씨에 두꺼운 전투복을 입고 있으니 땀부터 쏟아졌다. 하지만 그럴 겨를 없이 총기수여식을 가졌다. 총으로 충성을 하고, 대열을 정렬하고 있으니 벌써 군인이 된 느낌이 이었다.

21일, 본격적인 병영 체험이 시작되었다. 10에 점호하고 6시 기상하는 바른 생활식 군대생활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 졸기 일수였지만 다들 열심히 병영체험에 임하는 것 같았다. 처음 우리가 훈련받은 것은 제식훈련이다. 제식 훈련이라 함은 군의 기본이 되고, 군기가 되는 중요한 것이다. 다른 것들은 이미 고등학교까지 배운 것이라 쉽게 해내었지만 군인의 인사법인 경례 등 총으로 하는 제식훈련은 다소 어려웠다. 경례는 익숙하지 않아 어설픈 감이 없지 않았고, 무겁고 긴 M-16 소총은 다루기에 힘들었다. 오후에는 군대 예절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것은 앞으로 군생활을 하게 될 우리에게 좋은 밑거름이 될 교육이었다. 기본적으로 선임에게 경례하는 법부터 선임의 집무실을 방문할 때 예절까지 많은 군대예절을 배울 수 있었다.

22일, 먼저 총검술을 배우기전에 조교들의 멋진 시범을 보고 그 다음 부분 동작으로 배운 다음 연속동작으로 배우는 식의 교육을 받았다. 총검술은 적과 전투시 무기의 사용이 어렵거나 백병전을 치룰 때 적과 싸우는 방법중 하나라고 한다. 모두다 조교의 멋진 시범처럼 따라하기 위해 팔 뒤꿈치가 아픈 줄 모르고 M-16소총과 계속 부딪쳐 소리내며 열심히 따라했다. 비록 충분한 휴식과 물이 있었지만 34도 까지 오르내리는 온도 때문에 매우 무더웠다. 이 무더운 날 훈련받을 병들의 노고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는 경계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작전에서 실패한 군인은 용서 할 수 있지만 경계에서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라고 한 맥아더 장군의 말씀도 있듯이 경계란 군에서 중요한 행위중 하나이다. 암구호와 근무 교대, 적 발견시 취해야 할 행동 등 교관님의 자세한 설명과 조교님들의 시범으로 확실하게 배우고 실습해 볼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교육시간에는 정훈장교의 안보교육이 있었다. 이미 주적으로 알고 있던 북한이었지만 그 북한에 대한 대적관과 우리나라 주위에 얽혀있는 여러 나라들 간에 대한 안보관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좋은 교육이었다.

23일, 전시에 치러지는 소부대 전투인 각개 전투.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응용 포복 등의 기본적인 교육을 마치고, 본격적인 각개 전투를 해보았다. 목표를 향해 “약진 앞으로”라고 외치고 뛰며, 높은 보복으로 담벽에 접근하고, 철조망 사이로 등으로 포복하여 통과하는 등, 힘든 훈련이었다. 무릎에 멍이 들고, 팔꿈치에 피가 나고, 철사에 걸려 다치는 등 병들이 이 무더운 날 힘들게 훈련받는 모습을 상상하니 이 훈련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후에는 응급구조법에 대해서 배웠다. 도수운반법, 골절시 지지대를 이용한 응급처치법, 의식을 잃은 사람에게 하는 인공호흡법도 배우고 실습 해보았다. “자기의 친구와 가족이 다쳤다.”라고 생각하고 이 교육에 임해야 한다는 말에 모두들 열심히였다. 다시 저녁쯤에 야간 각개 전투 교육을 받았다. 낮에 배운 각개 전투를 기본으로 야간각개전투를 하게 되었다. 낮의 더위는 가셨지만 모기들이 여기저기에서 달려들어 어려움이 있었다. 도중 대대장님이 방문하셔서 좋은 말씀을 해주고 가셔서 모두들 힘을 냈다.

24일, 유격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PT체조 후 사단뒤에 있는 유격훈련장으로 행했다. 2학년선배님들이 서울로 잠시 세미나에 참석하러 가서 부재중이었지만 1학년만으로도 재밌고, 열심히 유격훈련에 임했다. 높은 곳도 밧줄을 타고 부지런히 올랐고, 밧줄을 타고 능숙히 웅덩이를 도하했다. 하지만 도중에 나태해진 모습에 중대장님의 꾸중과 기합도 받았다. 점심 식사 후에는 CBT를 통해 개인화기, 지뢰, 등의 교육을 받았다. 개인 화기부분에서는 한국의 K-2와 북한의 AK79를 비교한 것이 인상적이었고, 지뢰부분에서는 부비츄렙의 적용 실례 등이 흥미로웠다.

25일, 마지막 훈련인 행군이 있는 날이었다. 작전수행을 위해 실시되는 대규모 이동인 행군. 그에 비해 비록 짧은 거리였으나, 앞으로 군생활 중에 있을 행군을 미리 체험해 볼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몇몇이 군화가 발에 제대로 맞지 않아 물집이 잡혔지만, 실제 행군 거리만큼 행군한다면 이 정도쯤이야 하는 예상을 하게 하였다. 행군을 마치고 기동대대를 방문하였다. 그 대대의 시설은 정말 잘 되어있었다. 각 내무실 마다 8개정도의 침대와 개인 책상, 그리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노래방, 당구대, 헬쓰장 등이 구비되어있는, 신식 군대의 모습이었다. 앞으로의 군대가 조금씩 더 나은 환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6일, 일요일이고 훈련과 교육이 없어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개인의 종교에 따라 종교생활도 할 수 있고, 자기개발을 위한 시간을 가진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종교는 불교라서 아침 일찍 절에 가게 되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간단한 간식을 먹고 내무반으로 다시 복귀했다. 이처럼 군에서 자신의 종교에 따라 자유롭게 절이나 성당, 교회에 가서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오후에는 군사학과와 조교님들 간에 축구시합이 있었다. 말로만 듣던 군대 축구이지만, 몸싸움이 심하고 업사이드가 없는 것 빼고는 일반 축구와 별반 다를것이 없었다.

27일, 병영 체험의 아쉬운 마지막 날이었다. 대청소를 하고, 총기류를 반납하고, 개인물품을 정비하였다. 그리고 퇴소식, 처음 입소식 할 때와 다르게 어영부영함이 없이 한번의 연습을 거쳐 입소식 보다 더욱더 완벽하게 행사를 치뤘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주시는 중대장님, 소대장님, 교관님, 조교님들을 아쉬운 마음으로 뒤로하고 39사단을 나섰다.

길지만 짧은 7박8일 병영체험이었다. 하지만 훈련병의 교육과 훈련을 몸소 체험해봄으로서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밤에 불침번을 서면서 우리의 동료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 내무생활을 하면서 경험했던 단체생활, 군대예절과 제식훈련을 통한 군인다운 행동, 안보교육을 통한 올바른 안보관등을 배웠다. 그리고 힘든 상황 속에서 힘들게 훈련과 교육을 받는 병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병들이 군에게 요구할만한 점등을 느낄 수 있었다. 병영 체험은 정말 군인이 될 군사학과학생들에게 정말로 값진 교훈을 안겨주는 값진 체험인 것 같다. 그리고 훈련받은 만큼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면 값진 금보다도 귀한 경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훈련을 마련해주신 교수님들과 훈련을 위해 노력하신 군간부님들 조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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