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을 둘러싼 여러 가지 단상들
성(性)을 둘러싼 여러 가지 단상들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5.03.1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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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중심적 성문화 속에서 성폭력, 성매매로 재현
인간에게 성(sex)은 다면적인 얼굴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생리적 욕구 충족의 의미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고, 동시에 성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기제가 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이에게는 금지되어야 하는 무엇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권장되기도 한다. 이렇듯, 섹스는 동물들의 짝짓기와 다를 바 없는 본능적이고 비역사적 행동으로 인식되지만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섹스를 할 것인가에 관한 사회 규범과 규제 안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이를 어기면 쇠고랑을 차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섹스는 사회적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에 대해 가지게 되는 관념, 성적인 욕망, 성적인 정체성 및 성적 실천을 의미하는 섹슈얼리티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섹슈얼리티를 바라보는 시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흔히 드는 예로 전통적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성이 중심이었기에 여성의 섹슈얼리티도 그 수단 중 하나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아주 오랫동안 이러한 관념은 유지되어온 듯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마광수, 김완섭 등이 성해방 담론을 만들어내며 성적 자유, 성적 행복추구권 등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남성뿐 아니라 성적으로 억눌려왔고 소극적이었던 여성들도 부분적으로나마 자신의 성적 욕구를 드러내었고 '혼전순결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며, 사랑한다면 섹스는 당연한 행위라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며 신문 한 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몇 년 전 '처녀들의 저녁식사',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다', '싱글즈' 등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는 이유로 사회적 호응을 얻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그러나 거의 비슷한 시기에 소위 O양, B양으로 일컬어지는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들의 섹슈얼리티가 공개적으로 드러나서 피해자라고 항변할 만하건만, 오히려 사회적 지탄을 받으면서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게 됨으로써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렇듯 같은 지점에 있는 사건들이 다른 의미로 전달되어 사회적 파급을 미친다.

이는 우리사회의 근저에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가부장적 시각들을 보여주고 있다. O양, B양 비디오에 등장한 이들이 전통적인 성윤리 특히 여성이 가져야 할 성적 순결과 도덕적 정숙을 가지지 못해 사회로부터 퇴출을 당하는 과정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바라보는 사회 구성원들은 부지불식간에 여성의 정조관념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러한 시기를 틈타(?) '스캔들', '가문의 영광', '첫사랑사수 궐기대회' 등의 영화가 우리의 해이해진 도덕적 관념을 다시 한 번 부여잡는다. 이런 유의 영화들에 의하면 특히 여성의 순결만큼은 꼭 지켜져야 한다. 성이 해방되고 자신의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시대에, 한편으로는 동시에 여성의 정조관념, 순결이데올로기가 은밀하게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회가 그어놓은 성에 대한 기준의 중간지점에 어정쩡하게 서있게 된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같은 설문 조사결과에 '미혼여성들은 말로는 혼전 성관계나 동거에 관대한 척하지만, 정작 자신의 성적 욕구는 말하기조차 꺼린다'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한다. 혼전 성관계, 혼외정사 등의 비율이 증가하고 독신이 늘어나는 등 여성을 가족에 묶어두었던 성규범이 약화되고 전반적인 성적 자유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중적 성규범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우리사회의 성 풍속도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에 무지해야, 아니면 소극적이어야 정숙한 여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개별의 만남 속에서, 사회의 성해방담론이 여성 개개인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와 자기 결정권을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남녀간 이중적인 성규범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여성들이 아무리 현실적인 이익을 꼼꼼히 따져 행동한다 한들 결코 성적인 주체가 되거나 성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성중심적 성문화 속에서 여성의 성, 몸에 대한 통제는 바로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등으로 재현된다. 남성들은 손쉽게 여성의 성에 접근할 수 있으며 접근해도 되는 것으로 뒷받침해주는 논리 중 하나가 바로 '남성들은 성충동을 참을 수 없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매매특별법이 '인간의 성욕을 막고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좌파적 발상에서 나온 법'이라는 둥, '찌꺼기를 버릴 수 있는 하수구를 막는' 법이라는 둥 소위 사회 지도층의 발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의 77%가 스스로 성충동을 참을 수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는, 성충동을 참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참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고백으로 들린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성적 충동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진 기혼남성이 전체 성구매자의 70%를 넘어서는 현실은 그러한 논리를 너무 쉽게 허물어뜨린다. 작년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강화된 성매매 단속을 피해 많은 성구매자들이 우리나라를 한탄하며 동남아시아, 모스크바 등으로 성매매 원정을 간다고 한다. 놀라움을 금치 못할 열정이다. 병이라도 옮을까 두려운 존재일 뿐인 '창녀'들을 찾아 머나먼 타국행까지 마다 않는 이들은 다름 아닌 우리의 아버지, 오빠, 형들이다.

이러한 '관습헌법'과 같은 참을 수 없는 성충동 논리와 함께,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흔들리는 바늘에 실을 꿸 수 없다', '처음엔 저항하지만 나중에 결국은 좋아한다'는 식의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성관계가 터프함, 남성적 매력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포르노나 매체 또한 우리의 성관념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를 접하며 성에 대한 가치관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수반하는 성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가히 짐작이 간다 하겠다. 이러한 비공식적 성담론을 성찰과 비판없이 수용함으로써, 개별적인 성관계이기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 성폭력이 얼마나 발생했을지도 짐작이 간다. 이러한 시각으로 본다면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문제는 지속적으로 보장되어온 남성의 성적 충동을 보장하기 위해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적 접근이 용인되는 사회적 성규범 체계의 연장선상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속에 몸담고 있는 우리가 사회의 가치관이나 관습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성관계 역시 성폭력이나 성매매와 함께 같은 줄의 한 쪽 끝을 잡고 있는 폭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사회의 다양한 성적 존재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관념과 성역할을 성찰하는 것, 타인을 배려하는 것과 같은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가 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고 새로운 성의 역사를 쓰는 첫걸음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우리 함께 이 첫걸음에 동참하는 것은 어떨까?

안미수 강사(여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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