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 기억·소통할 소중한 가치
어릴 때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 댁에 갔다. 할머니 댁에는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들여다보면 안이 컴컴한 우물과 두레박, 담장을 대신하는 탱자나무, 할아버지가 계시는 사랑방의 오래된 물건과 돋보기, 마당 한쪽 구석에 돌돌 말려 서 있던 멍석, 눈이 왕방울만한 소, 그리고 새빨간 볏을 가진 수탉.
그 수탉에 얽힌 내 기억은 이렇다. 닭들은 처음엔 내가 지나갈 때마다 나를 피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자 닭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옆으로 지나다녔다. 하지만 나는 계속 닭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닭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발을 굴렀다. 그러자 새빨간 볏을 가진 수탉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할머니 댁에 있는 내내 수탉을 피해 다녔다. 수탉은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기억에는 오래되어 희미해진 것들도 있고, 단 한 번 경험으로 분명하게 기억되는 것들도 있다. 말이나 이미지를 통해 의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기억도 있지만, 자전거 타기처럼 경험 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기억도 있다.
수탉에 대한 나의 기억은 어떻게 뇌에 저장된 것일까? 나의 눈을 통해 수탉의 색깔, 모양, 나에게 달려오는 방향 등 정보가 들어온다. 들어온 정보는 각각 색깔, 모양, 운동, 방향 등을 담당하는 여러 대뇌피질에서 동시에 처리된다. 이런 신경활동이 지속되면 전두엽 부분에서 활동이 일어나고, 이 내용은 기억으로 저장된다. 이후 나는 수탉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다양한 피질구역들에 분산된 다양한 정보를 모아서 일관된 전체로 재조립하여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방 잊히는 단기기억과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장기기억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반복이 필요하다. 반복이 많을수록 기억의 강도와 지속시간이 길어진다. 그리고 기억에 진입한 후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기억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형태가 된다. 장기기억이 되기 전 기억은 취약해서 외부 자극에 의해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신경세포 관점에서 보면, 자극이 반복되면 기억을 위한 유전자가 발현되고, 단백질 합성을 통해 새로운 시냅스 연결들이 성장하게 된다. 시냅스의 구조가 단단해지는 경화 단계를 거치게 되면, 뇌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새로운 정보를 얻고 보유할 수 있는 것은 기억을 위해 뇌 구조가 쉽게 변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뿐만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경험도 뇌 구조를 변형시킨다. 독일 콘스탄츠대학 토마스 앨버트 교수는 현악기 연주자들의 뇌와 음악가가 아닌 사람들의 뇌를 비교했다. 현악기 연주자들은 연주하는 동안 왼손의 집게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 각각 따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대신 활을 쥔 오른손 손가락들은 복잡한 동작을 하지 않는다. 뇌 영상 촬영 결과, 왼손 손가락들을 반영하는 피질구역이 음악가가 아닌 사람들보다 현악기 연주자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이 결과는 개인이 그 부위를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대뇌 피질 구조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역사적 의미가 한층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광장에서는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이 진행되었으며, 여러 지자체는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표석을 세우거나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기억을 통해 보존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기억을 전달한다. 또한 이 기억은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민주화에 대한 경험과 기억은 우리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며 정체성이다.
<위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7년 6월 30일(금)자 10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