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칼럼] 정일근 교수
[국제신문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7.06.12 09: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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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길이 아니라 '섬'입니다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저는 제주를 외면하고 지냈습니다. 가기조차 싫었습니다. 유커들이 제주를 점령했을 때 저 역시 속 좁은 한국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제주를 유커들의 섬으로 인정하고 회피해 버렸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주는 우리가 가진 귀하고 아름다운 섬이란 생각이 저에게서 지워져 버렸습니다. 제 기억 속 USB에 오랫동안 저장해왔던 제주의 추억도 서귀포 '먼나무' 붉은 꽃이 뚝뚝 떨어지듯 사라져버렸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처럼 유커들이 '사드'에 '복수'하듯 제주를 버렸고, 제주는 다시 우리의 섬으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중 관계개선으로 다시 유커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보도에 서둘러 제주행 항공권을 구했습니다. 또다시 유커의 관광지가 되기 전에 제주에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제가 제주에서 사랑하는 비자림, 해안도로, 사려니오름과 깅이죽, 각재기국, 요즘 제철인 보목의 자리돔물회를 떠올렸습니다. 오랫동안 눈에 담지 못한 제주의 화가 변시지 선생님의 그림들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제 동행은 이 무렵 중산간에 핀 띠풀의 이삭들이 바람에 날리는 풍경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주에 도착하니 중국어는 모국어보다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제주에 머무는 내내 유커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중국어 안내방송이 쏟아졌습니다.

  저와 동행은 사람을 피해 섬 밖의 섬들을 걷기로 했습니다. 우려는 됐지만, 동행이 소섬인 우도(牛島)를 가보지 못했다 해서 우도를 걷기로 했습니다. 도착해보니 제가 체험했던 예전의 우도는 누워 있는 소가 귀찮아서 일어나 도망쳐 버렸는지, 전혀 다른 섬 같았습니다. 우도를 두 발로 느끼며 걸어보려고 왔지만, 다양한 전동 탈거리가 폭주족처럼 우도의 길을 점령해버려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우리도 같이 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도는 전동차 천국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저런 속도로 달리다보면 해안선 도로가 아스팔트 포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습니다. '우보(牛步)'란 말이 있습니다. '소처럼 느린 걸음'의 여유를 뜻합니다. 우도는 그 우보에 적합한 섬이었습니다. 이제는 속도(速島)란 이름이 어울렸습니다. 길가에는 국적 불명의 음식점까지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제주란 섬에 와, 그 섬 밖의 작은 섬까지 나와, 전동차로 달리고 햄버거, 돈가스를 먹어야 한다면 우도는 더는 섬이 아닙니다. 곧 제주와 우도 사이에는 다리가 놓일지 모르겠습니다.

  김영갑(1957~2005)이란 사진가가 있었습니다. 부여 출신의 그는 1985년 카메라를 들고 제주도에 들어와 제주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진실로 제주를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루게릭으로 6년간 투병하다 제주를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그가 만든 두모악 갤러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제주 사람들도 보지 못한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남겼습니다. 김영갑이 다시 살아나 오늘의 제주를 본다면 아마 이삿짐을 꾸렸을지 모를 일입니다.

  오래전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과 이탈리아의 알타미라 동굴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인류의 유산인 선사동굴과 그림들이 훼손되지 않고 원형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관람객의 수를 하루에 몇 명으로 제한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제주도 그런 정책이 필요한 곳이 많을 것입니다. 사람의 속도를 늦추게 할 차단막 같은 정책이 필요합니다. 무방비적인 개방은 결국, 유커와 육지 손님으로 해서 많은 것을 사라지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우도에서 받은 상처를 다른 섬 비양도에서 치료받았습니다. 비양도는 제주 한림읍 앞바다에 있는 조그만 섬입니다. 날아온 섬, 비양도란 뜻처럼 1000년 전 화산 폭발로 제주에서는 가장 최근에 생긴 섬입니다. 한림항에서 하루 3번의 배편이 비양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배에서 내려 한 시간 남짓이면 다 돌아볼 수 있습니다. 보말죽과 피조개가 특산물이어서 제주다운 맛을 푸짐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없어 오히려 평화로운 섬이었습니다.

  이번 제주여행에서 저는 올레꾼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올레에 순례자들의 발길이 많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그 역시 속도의 문제였을 것입니다. 처음 올레가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그때와 유커 공화국이 된 지금, 순례자들은 제주 올레에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올레에 번호를 매긴 것도 실패의 원인일 것입니다. 1, 2, 3, 4…, 번호가 붙으면 속도가 생깁니다. 사람은 번호 따라 경쟁하듯 달립니다. 그 번호를 다 돌고 나면 이내 싫증을 냅니다. 올레는 번호가 아닌 그 지역의 특색을 딴 유혹적인 이름이 붙여지길 권합니다. 길은 번호가 아니며, 42.195㎞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백이 좋은 계절에 걸으면 좋은 길이 있고, 감귤이 익을 때 좋은 길이 있을 것입니다.

  제주도는 길[道]이 아니라 섬[島]입니다. 그 길들이 하루빨리 평화로운 길이 되길 바랍니다. 자본보다 섬을 먼저 생각하는 길이길 바랍니다.

<위 글은 국제신문 2017년 6월 10일(토)자 19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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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애 2017-06-12 17:46:23
제주는 저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곳입니다.
달랑시오름과 아끈다랑시 오름의 길에 만난 제주의 상처
제주의 달
제주는 향기로운 벗들과의 여행 추억으로 가득합니다.
다음에는 비양도에 가보아야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