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칼럼] 정일근 교수
[국제신문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7.03.06 0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 가슴속 고래는 안녕하신지요?

 

  "고래에게 물어보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의 답을 토론과 대화로 찾기 어려울 때, 저는 불쑥 이런 제안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부터 청춘들은 답이 푸른 바다의 고래에게 있는 듯 마음이 달떠 고래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달 제가 지도하는 대학언론의 주역인 청춘들과 답을 찾기 위해 '고래바다'인 울산을 찾았습니다.

  이럴 때쯤 나오는 질문은 "고래를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입니다. 울산바다는 예로부터 '가없는 고래바다'입니다. 고래바다에는 반드시 고래가 있습니다. 우리 눈이 어리석어 고래를 보지 못하는 일로 고래의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지만 고래는 우리를 보고 있으니까요. 질문과 답이 하나가 될 때 고래가 기적처럼 나타나는 것을 고래목측조사에 참여하면서 저는 수없이 경험해 왔으니까요.

  울산시 어업순시선 '울산201호'(17t·선장 이용우)는 천천히 방어진항을 떠났습니다. 전날 밤 고래를 기대하며 잠을 설친 청춘들은 라이프재킷을 단단하게 갖추고 사용방법까지 교육을 받았지만, 항구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모든 답을 '바다'라는 과정을 지나야 '고래'라는 결과가 나오는 법입니다.

  저와 함께 떠난 청춘 중에서 바다에서 고래를 직접 만난 대학생은 없었습니다. 돌고래 수족관에 사육되는 돌고래를 구경한 청춘은 있었습니다.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돌고래는 '슬픈 고래'입니다. 저는 사람에게 잡혀와 갇혀 사는 돌고래를 만날 때마다 그 눈을 자세히 봅니다. 참 슬픈 눈입니다.

  한바다에서 만나는 돌고래는 '웃는 표정'입니다. 자유가 주는 생명의 충동감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생기가 가득 찬 돌고래 떼의 유영을 저는 '바다피아노'로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그 순간, 돌고래 떼는 바다란 피아노의 자유로운 건반이 되어 바다를 탄주합니다. 시속 25노트로 연주하는 바다피아노는 살아있는 연주입니다.

  어느 해인가 5000여 마리의 돌고래 떼가 유영하는 한가운데 초대돼 그 연주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만난 백건우, 양방언, 이루마, 유키 구라모토 등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자가 다 모여서 연주하는 황홀한 시간 같았습니다. 돌고래들은 저를 단번에 엔도르핀이 넘치는 관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고민하는 답을 고래가 가르쳐 준다는 것을 고래탐사에서 배웠습니다.

  청춘들은 1시간30분 정도 고래를 찾지 못한 채 거친 파도를 타며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뱃멀미를 견디지 못해 드러눕는 친구들까지 속출했습니다. 순간, 어업순시선 선장이 외쳤습니다. "오른쪽 앞에 돌고래 떼 출현!" 빛을 잃어가던 청춘들은 순식간에 제 빛을 찾고 처음 만나는 1000여 마리 참돌고래 떼 유영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오전 10시32분, 북위 35도 32분 41초, 동경 129도 36분 23초 울산시 동구 주전동 이덕암등대 동방 5.5마일 해상이었습니다. 바다에 일찍 봄이 온 때문인지 멸치 떼가 몰려들자 참돌고래 떼도 함께 나타났습니다.

  참돌고래 떼는 유선형의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빠른 속도를 내 청춘들이 탄 배를 따돌렸습니다. 추적하지 않는 친구라는 신호로 배의 속도를 늦추자 돌고래 떼 역시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돌고래들은 배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공중제비의 묘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청춘들이 고민하는 문제의 답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푸른 바다에 고래 없으면/푸른 바다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속에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청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날 밤에 예정된 토론회에서 우리가 고민하는 답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고래가 사는 푸른 바다에서 마음속에 고래를 가득 담은 청춘들이 쏟아낼 답이 참돌고래 떼보다 많을 것이니까요.

  청춘들이 답을 찾고 돌아간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울산 돌고래생태체험관에서 일본 와카야마 현 다이지에서 수입해온 참돌고래 한 마리가 나흘 만에 폐사했습니다. 생태체험관이 문을 연 후 벌써 6마리째 폐사였습니다. 죽은 돌고래는 청춘들이 만난 돌고래와 같은 종류였습니다.

  오래전 육지 동물이 바다로 진화해간 고래가 숨을 쉬지 못해 죽어갔다는 것은 분명 사람의 죄입니다.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의 답을 우리가 폐사시킨 것입니다. 푸른 바다를 피 흘리는 붉은 바다로 만드는 일입니다.

  고래가 아프게 죽어가는 시대, 당신에게 고래는 무슨 의미입니까? 저에게 고래는 바다와 같은 뜻입니다. 아니, 바다보다 더 넓고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에 고래가 살지만 저는 고래 속에 바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래가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건 바다가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바다는, 당신 가슴속의 고래는 안녕하신지요?

<위 글은 국제신문 2017년 3월 4일 (토)자 19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