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럼] 이재성 시인
[경남도민일보 칼럼] 이재성 시인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7.03.0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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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희망고래가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은 '희망'

  고래 찾는 일 꿈 좇는 것과 유사

 

  울산 앞바다에서 고래를 기다린 적 있다. 경남대 청년작가아카데미 겨울창작캠프의 하나로 청춘들의 희망을 찾는 프로그램이었다. 고래를 찾는 일은 어쩌면 꿈을 좇는 일과 비슷하다. 망망한 바다에서 고래는 어디 있을지 모른다. 제 몸 다 드러내 보이지 않는 저 바닷속 고래처럼 청춘들의 꿈 역시 막연하고 아련하다.

  새벽 동이 트기 전 장생포로 향한다. 나의 맡은 바 임무는 학생들을 무사히 항구에 데려다 주는 일. 그리고 승선을 시키는 일. 무사 귀항을 바라는 일이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겨울 주전바다에 동이 트기 시작했다. 미리 예약해 놓은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는다. 식당 창문을 거세게 때리는 바람이 분다. 창밖 수평선이 출렁인다.

  따뜻한 국물이 나오자 김 서린 창에 밖이 보이지 않는다. 매서운 바람 앞에 걱정이 출렁인다. 바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오늘 항해가 만만치 않다는 일이다. 장생포항으로 가는 내내 한 번도 배를 타보지 않은 청춘들의 희망이 걱정된다. 고래를 기다리는 일. 그리고 고래를 찾아나서는 일. 부푼 희망이 절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절실함이 고래를 만나게 해 줄 것이다. 라이프재킷을 입은 학생들. 고래목측조사를 위한 조그만 배에 승선하는 학생들에게 마지막 보급품을 전달했다. 긴 사이렌 울리며 출항하는 배의 선미를 바라보았다. 처음 출항을 했던 나의 지난 모습이 보였다.

  첫째, 바다 위 갈매기 떼를 찾을 것. 둘째, 하얗게 부서지는 백파를 찾을 것. 셋째, 치열하게 두 눈 부릅뜨고 고래를 간절히 찾을 것. 고래를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출항 전 선장님께서 오늘 파고가 높다고 했다. 방파제를 벗어나면 고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첫 항해에 만나는 멀미라는 적. 그 적과의 싸움에서 견뎌낸다면 어쩌면 고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방파제를 지나 조사선이 수평선과 하나가 되어갔다.

  오전 10시 32분, 북위 35도 32분 41초. 동경 129도 36분 23초. 함께 승선한 원장님의 뜨거운 전화. 울산시 동구 주전동 이덕암등대 동방 5.5마일 해상에서 참돌고래 떼 1000여 마리 발견!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환호성은 엔도르핀이다.

  "왼쪽에 고래다, 고래!" 바다 위에서 생생하게 전해지는 희망고래와 접선이다. 높은 파도를 견뎌야 만날 수 있는 고래다. 희망이라는 보이지 않는 단어가 고래를 통해 눈에 보인다. 이들이 본 것은 고래만이 아닐 것이다.

  정자항 방파제로 배 한 척 들어온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조사선이다. 계류 사다리를 놓지 못해 배와 배 사이를 넘어오는 학생들. 상기된 표정을 한 학생이 말했다. '수백, 수천 개의 바다 전구가 켜짐과 꺼짐을 반복하는 것 같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많았고 아름답다'고. 말로만 들었을 때와 TV 속 장면을 실제로 보는 것은 다르다. 마음속에 있던 고래를 현실에서 만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찾아 헤매는 희망 그리고 꿈은 고래를 찾는 일과 같다. 뱃일에 지칠 때마다 찾아 와 주었던 친구가 있다. 바로 고래다. 그 친구는 물고기 떼를 몰아주기도 하고 긴 항해 동안 뱃전을 지키며 동행해 주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같은 희망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었다.

  오늘부터 바다 같은 가슴에 희망을 품고 한 마리 고래를 가슴속에 키워나가야겠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바다를 찾는 것은 어쩌면 내 마음속 고래가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위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7년 3월 3일 (금)자 10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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