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집권 5년 동안 북한은 너무 변했다. 핵미사일 능력을 포함한 군사적 역량을 비롯해 과학기술 발전 등에 기초한 자생력, 자강력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지난해 4, 5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역대 최강으로 평가받는 대북제재를 당하면서도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경제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재의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는 김정은 체제는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는 더 강해졌고, 독해졌다. 반면 경제·사회적 측면을 보면 더 유연해졌고, 어쩌면 파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가 주장하고 있듯이 현재 북한 경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아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매우 원시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혼합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 주민들의 생존 메커니즘만 들여다보면 원시 자본주의 시장경제 수준도 이미 넘어섰다. 불완전하지만 자본주의로의 체제 이행 단계에 돌입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김정은 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는 경제체제에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제재와 고립 압박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시장화를 묵인하고 허용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지만, 시장화가 진전될수록 이는 역설적으로 주민들의 정체성을 `수령`에서 `시장과 돈`으로 이동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시장화의 진전은 김정은에게 양날의 칼과 같다. 시장을 통한 통치자금 확보로 핵무력을 포함해 생존력을 더 강화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주민들의 의식을 바꾸고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시장 요소의 확산은 주민들에게 정권의 모순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은) 시장 중심 경제정책을 제시하면, 그가 더 이상 신적인 존재로 사회를 이끌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의 차기 지도자도 이 양날의 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대북·통일정책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우리의 보수 정권은 제재 압박의 칼을 사용해 왔다. 시장화에 미친 영향만을 놓고 보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시킨 측면도 있다. 북한 정권이 통치자금을 확충하기 위해 내부 시장을 이용하고, 확대시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경제원리와는 동떨어진 북한 당국의 통제력은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고, 주민들에 대한 착취 수준은 더욱 높아졌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제재는 유지하되, 북한 내부 변화를 더욱 추동할 수 있는 개입전략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화를 보다 획기적으로 진전시켜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적 인권을 향상시키고, 궁극적으로 체제 전환을 가속화시키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의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정책적으로 주민들의 시장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협력방안을 구상해야 한다. 정권은 압박을 하면서도 주민들과는 경제 협력을 지속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북한 문제를 주변 국가에만 의존하지 않는 우리의 주도성, 능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대선 주자들은 핵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 북한의 체제임을 인식하고, 체제 자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실행 가능한 공약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위 글은 매일경제 2017년 2월 1일 (수) 35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