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歲事長相續(세사장상속)
농사일은 사뭇 이어지면서
終年未釋勞(종년미석로)
해 가도록 수고로움 못다 풀겠네
板愁雪壓(판첨수설압)
판자로 된 처마에는 눈 덮일 걱정
荊戶厭風號(형호압풍호)
지게문엔 바람소리 울릴 게 싫어
霜曉伐巖斧(상효벌암부)
서리 아침 산에 올라 나무도 베고
月宵升屋(월소승옥도)
달 뜬 밤엔 지붕 이을 새끼 꽈야지
佇看春事起(저간춘사기)
봄농사를 시작할 때 기다리면서
舒嘯便登皐(서소편등고)
파람 불며 언덕이나 올라봐야지
이 시는 겨울철에 우리 농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삶의 모습을 읊고 있는데, 비록 고려시대 농촌 풍경을 읊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수련에서는 농사일은 사뭇 이어져 한 해가 다 가도록 수고로움은 끝이 없다고 했다. 함련과 경련의 내용은 수련의 ‘수고로움 못다 풀겠네(未釋勞)’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다. 함련에서는 눈이 내릴 때를 대비해 판자로 된 처마도 손질해야 하고, 지게문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문도 새로 바르고 문풍지도 달아 놓아야 한다. 경련에서는 서리가 내리는 새벽에는 산에 올라가 땔나무를 하고, 달이 뜬 밤이면 지붕의 이엉을 이을 새끼도 꽈야 한다고 했다. 미련에서는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봄농사 시작할 때를 기다렸다가 휘파람을 불면서 동산에 올라보는 것도 하나의 소일거리라 했다. 여기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쓴 ‘저(佇)’는 ‘몹시 기다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상황들이 우리를 몹시 힘들게 하고 있다. 일찍이 맹자는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아니한 것(仰不傀於天, 俯不於人)”이 군자(君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 가운데 하나라 했다. 이 어려운 시국에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덕을 갖춘 군자(위정자)의 출현을 고대해 본다. 그리하여 겨울날 동산에 올라 휘파람을 불면서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농부처럼 살아가고 싶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7년 1월 3일 (화)자 22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