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과학칼럼] 서쌍희 교수
[경남도민일보 과학칼럼] 서쌍희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12.2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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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뉴런과 국정조사

  동일한 상황서 같이 느끼는 능력 '공감'…청문회서 모르쇠하는 공직자 퇴락 당연


  1993년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의 자코모 리촐라티 교수 연구팀은 원숭이의 뇌에 전극을 삽입한 후 물건을 집을 때 뇌 반응을 측정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연구원이 무언가 집으려고 손을 뻗자, 원숭이 뇌에 심어놓은 전극과 연결된 컴퓨터에서 신호음이 들려왔다. 원숭이는 가만히 앉아 있었고 물건도 집지 않았다. 그럼에도 물건을 잡는 행위에 관여하는 뇌세포가 반응한 것이다. 뇌세포 중 하나인 거울뉴런은 이렇게 발견됐다.

  거울뉴런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행동을 하는 것과 똑같이 반응하는 신경세포이다. 예를 들어, 야구 경기를 시청할 때 투수가 공을 던지는 자세를 취하면 나의 거울뉴런은 마치 내가 공을 던지는 것처럼 반응한다.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그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다. 거울뉴런은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이것을 공감이라 부른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피터 홉슨 교수는 다양한 모자를 쓰고 행복하거나 우울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의 사진을 자폐아 그룹과 비자폐아 그룹에 보여준 뒤 반응을 분석하는 실험을 했다. 먼저 사진을 분류해 두 개의 상자에 넣어보라고 했다. 첫 단계에서는 자폐아와 비자폐아 모두 모자를 쓴 사람의 성별에 따라 사진을 분류했다. 이번엔 다른 기준으로 사진들을 다시 분류하라고 했다. 이 단계에서 비자폐아들은 표정으로 분류했지만, 자폐아들은 모자 생김새를 기준으로 분류했다. 자폐아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는 것, 즉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교수 연구팀은 2000년 신경과학회 총회에서 거울뉴런의 결함이 자폐증의 원인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앞서 연구팀은 다른 사람 행위를 관찰하고 있는 자폐아 그룹과 비자폐아 그룹의 뇌파를 측정했는데, 자폐아들의 거울뉴런 영역 뇌파 활동이 비자폐아보다 낮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간에게 거울뉴런은 왜 필요할까? 다른 사람과의 친밀성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는 모방이다. 우리는 모방을 통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고, 그것을 통한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공감, 사회성, 서로를 이해하는 능력과 직결된다. 거울뉴런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확장시켜 사회를 형성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생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국정조사 청문회를 지켜보며 거울뉴런의 공감 능력을 의심하게 됐다.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의 답변은 참으로 갑갑하고 답답하다. 청문회에서 증인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단순하다.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대통령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재벌들로부터 수백억 원 돈을 거둘 때 대가는 없었는가 등 국민 누구나 궁금해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청문회 증인들은 하나같이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한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책임을 생각하면 말문이 막힌다. 그들은 국민이 아닌 대통령과의 공감만 중요하게 여겼다. 국민과 소통하거나 공감하는 것은 아예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공감해야 하는 것은 대통령도 아니고, 청문회장의 국회의원도 아니다. 정말로 그들이 공감 능력을 발휘해야 할 대상은 청문회를 지켜보는 수많은 국민이다. 국민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을 그들만 모른다.

  국민을 무시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거울뉴런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됐다.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생물학적 개체는 그 무리에서 도태된다. 국민과 공감하지 못하는 공직자의 퇴락은 당연한 것이다.

<위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6년 12월 23일 (금)자 10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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