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기고] 변종현 교수
[경남신문 기고] 변종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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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1.0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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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의 결기궁(結綺宮)에 담긴 역사의식

  김부식(1075∼1151)은 주로 고려 인종 때 정치가로 활동했고, 은퇴 후에는 삼국사기(三國史記) 편찬을 주도하면서 역사를 정립하고 고문체(古文體)를 확립하려고 했다. 그는 당대에 정지상과 함께 이름을 날렸는데 정지상은 시로, 김부식은 문으로 명성이 높았다.

  김부식이 지은 ‘결기궁’(結綺宮)은 당대 역사에 대한 견해를 드러낸 영사시(詠史詩)이다. 즉, 김부식은 이 시를 통해 고려 인종 때 서경천도(西京遷都)를 주장하던 사람들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堯階三尺卑(요계삼척비)

 


  요임금이 쌓은 계단 석 자였어도

  千載餘其德(천재여기덕)

  천 년토록 그 덕이 남아 전하고

  秦城萬里長(진성만리장)

  진나라가 세운 성곽 만리였어도

  二世失其國(이세실기국)

  아들 때에 이르자 나라 잃었지

  古今靑史中(고금청사중)

  예나 지금 남아 있는 역사 속에서

  可以爲觀式(가이위관식)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었을 텐데

  隋皇何不思(수황하불사)

  수황제는 어찌 생각 못하였던고?

  土木竭人力(토목갈인력)

  토목일로 백성의 힘 다 써버렸나

  김부식은 중국 진(秦)나라와 수(隋)나라 왕들의 행적을 통해 왕과 백성의 관계가 어떠해야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제시했다. 왕은 토목공사와 무력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이 아니라 덕으로 다스려야 함을 말하고 있다. 수련과 함련에서는 요임금은 흙으로 쌓은 계단이 석 자인 궁궐에서 지냈지만 천년토록 그 덕이 남아 전하고 있는데, 진시황은 만리나 되는 장성(長城)을 쌓았지만 아들인 호해(胡亥) 때에 나라를 잃게 됐다고 했다.

  경련과 미련에서는 역사란 후대 사람들에게 거울과 같은 것인데, 수 황제는 이러한 것을 본받지 못하고 토목공사로 백성의 힘을 다 써버린 것을 탓하고 있다. 수양제(隋煬帝)는 막대한 인력을 소모해 만리장성을 재건했고 긴 운하를 팠고 거대한 궁전을 건축하였으며, 끝없는 전쟁으로 백성들을 힘들게했다. 결국 반란이 일어나 남부로 피난했다가 암살당했다. 결기궁은 진후주(陳後主)가 지었는데, 이 시에서는 수양제가 지은 것으로 잘못 알고 읊었다. 이 시에서 덕으로 다스렸던 요임금과 권력과 무력으로 다스렸던 진시황과 수양제를 대비시키면서, 정치의 성패는 토목공사와 무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덕과 어진 정치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6년 11월 4일(금)자 27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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