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동문 시인, 신문사 칼럼 게재
이재성 동문 시인, 신문사 칼럼 게재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10.0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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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세대공감] 란에 ‘안부를 묻다’ 주제로

  높은 하늘에 방심했다. 긴 항적을 가진 시월의 태풍. ‘차바’가 지나간다. 전화기를 들어 안부를 걱정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한다. 아무 탈 없이, 걱정 없이 평안하지 못한 날들이 이어진다. 마음이 흔들린다. 마음에 태풍이 분다.

  규모 5.8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설계와 건축이 잘된 건물에서는 피해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라 한다. 보통 건축물에서는 약간의 피해가 발생한다고 한다. 경주에서 창원까지 110㎞를 달려온 진동은 나를 흔들어 놓았다.

  발끝에서 감지한 진동은 심장을 뛰게 하였다. 순간 뇌의 기능이 마비되었다. 판단력 상실. 분명히 무서운 기운을 감지했지만 어떻게 할지 몰랐다. 첫 경험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두 번째 진동이 찾아오자 그때서야 밖으로 뛰어나갔다. 집 밖 풍경은 아수라장이다. 어느 누구 하나 어디로 갈지 몰랐다. 아파트 경비실 앞에 모여 불안을 이야기한다. 흔들리고 흔들리다 무너져버리면 그만인 곳에서 모두들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최첨단 기기인 스마트폰은 불통이었다. 긴급재난문자도 오지 않았다.

  지난 항차 11개의 태풍을 맞으면서도 이토록 불안하지 않았다. 기상예보도를 해독하던 국장이 알려주는 태풍의 진로. 선원들은 선내 모든 집기들을 흔들리지 않게 낚싯줄로 꽁꽁 싸맸다. 흔들리는 마음까지 함께 묶었는지도 모른다. 점점 가시화되는 태풍을 기다린다. 선회창 밖에 피어나는 하얀 백파는 언제고 우리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두 팔 벌려 맞이하는 자세 앞에 바다는 내일을 돌려주었다.

  뒤늦게 국민안전처의 지진발생 시 국민행동요령을 펼친다. 지진으로 흔들리는 동안은 테이블(책상) 밑에 들어가 몸을 보호한다. 집안 테이블이 가족을 지켜 줄 수 있을까. 그 책상 위에서 지진대피요령을 읽는다. 전기·가스불을 꺼서 화재를 예방하고, 문을 열어 출구를 확보한다. 진동이 멈추면 계단을 이용하여 건물 밖으로 대피한다(엘리베이터 이용금지). 순서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고민하다 ‘출구를 확보한다’에 밑줄을 긋는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가방이나 손으로 머리를 보호한다. 낙하물에 유의하여 신속하게 공원·운동장 등 넓은 공터로 대피한다. TV·라디오나 방재기관에 의한 올바른 정보에 따라 행동한다.

  단 6줄의 짧은 대피요령을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자연재해 앞에서 그 누구도 나를 지켜 줄 수 없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지켜야 하는 가족들과 함께 재난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일들이 내 가슴을 울린다.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두려움. 긴급재난문자에 깜짝깜짝 놀라는 나는 여진과 함께 살고 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가족들과 함께 재난 발생 시 모일 장소를 정한다. 아파트 지하와 큰 운동장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정말 일어나면 어쩌지”라는 아내의 말에 “살아서 만나자”란 실없는 소리를 했다. 재난대비 비상용품도 준비하기로 한다. 물·비상식량·구급상자 등 준비 리스트를 읽는 것도 벅찼다.


  더 이상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지진과 예고된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제대로 울리지 않는 방재기관의 올바른 정보. 대비 없이 맨몸으로 맞이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자연 앞에 자신의 목숨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생과 사는 순식간이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있다. 신속 정확한 재난 정보를 받을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 준비하는 재난대비 비상용품이 유통기한을 넘어 영원히 사용되지 않길 기도한다.

이재성 동문 시인(경남대 청년작가아카데미 조교)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6년 10월 7일자 10면에서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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