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칼럼] 임을출 교수
[매일경제 칼럼] 임을출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10.0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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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실용적 셈법`과 우리의 대북정책

  얼마 전 중국 지린성의 한 대학에서 열린 세미나 토론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흥미로운 현상은 시리아 내전 등으로 난민이 급증하고 있는 유럽 상황이 한반도를 연구하는 중국 학자들에게 주요 관찰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상당수 유럽인들은 난민들이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자신들을 테러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왜 중국이 더 세게 대북 제재를 해서 북한의 핵개발 시도를 꺾지 못하느냐, 나아가 북한 정권을 고립·압살시키는 데 중국이 나설 수도 있지 않느냐고 추궁하면 중국 학자들은 난색을 표시하며 반박한다. 유럽의 난민 위기를 가리키며 북한 정권의 붕괴나 혼란은 곧 자신들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시한다. 이는 중국 정부가 강력한 대북 제재 시행 과정에서도 민생 분야 교역을 제외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사실 북한과 중국 간 국경선 길이는 휴전선(248㎞)보다 5배 이상 긴 1300㎞에 이른다. 이전 상당 기간 북중 국경지역 주민들은 국경선을 자유롭게 오가며 이웃사촌처럼 사이좋게 지냈다. 지금은 북중 접경지역 철조망이 쳐져 있지만 북한 정권 붕괴로 내부 혼란이 최고조에 이른다면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철조망을 허물고 중국 측 지역으로 쏟아들어갈 것은 뻔하다. 중국이 북한 주민들을 불법 난민으로 규정하고, 강제적으로 막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도 분쟁을 피해서 다른 나라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난민들은 주로 인접 국가들이 수용하고 있다. 대규모 북한 난민의 유입은 가장 인접한 국가인 중국으로서는 적지 않은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 정권의 적절한 안정성 유지가 중국의 국익에 훨씬 더 부합된다는 전략적 판단은 여전히 확고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놓을 것이다"면서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탈북을 권유했다. 과연 이런 권유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 것일까.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 시도는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거는 일이다. 지금의 삶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다. 더구나 이들의 보다 안전한 탈북을 지원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서는 중국이 유일하다. 중국의 직간접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과거 동독 주민들이 탈출을 시도했을 때 이웃나라 헝가리가 국경을 개방해 서독행을 돕고, 베를린 장벽 붕괴에 기여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중국에 기대할 수 있을까. 과연 중국이 이런 지원을 할 만큼 지금의 한중 간 신뢰와 공조 체제는 굳건한 걸까.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 단절까지 감수하면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탈북자를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이들의 한국행을 친절하게 도와줄까.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또한 박 대통령은 `반인륜적 통치의 종식`도 언급했다. 북한의 급변 사태 가능성에 대한 대비도 지시했다. 단순히 북한 당국과 주민 등을 분리하는 대북 전략을 넘어 김정은 정권 붕괴 촉진 정책을 공론화하는 것으로 읽힌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 극단적인 방법 외 대안이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대북 제재의 목표가 북한 체제 붕괴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어서 한중 간 대북 공조의 균열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국은 핵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동북 3성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도 적정 수준의 북한과 교류협력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국경지역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사는 것을 중요한 전략으로 간주한다. 무모한 핵 보유에 매달리는 김정은 정권은 밉지만 북한 주민들은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핵과 주민에 대한 정책을 분리해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태풍과 홍수로 고립된 북한 주민 3명을 중국 공안국 소속 변방부대가 구조한 일이나, 최근 함경북도 홍수 피해와 관련해 북한에 물품을 기증한 것도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닌 셈이다. 실제 중국의 이런 구조와 지원 소식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관찰하는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북한 내 시장화의 급진전 현상이다. 밖에서 보는 김정은 정권의 이미지는 핵과 미사일로 대변되지만, 실제 북한 내부의 변화는 중국 기업들에 비용 절감, 새로운 시장 확보 및 투자 대상지 등의 측면에서 커다란 기회로 간주되고 있다. 결국 중국의 `실용적 셈법`을 고려한 대북 정책이나 전략이 나와야 최소한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위 글은 매일경제 2016년 10월 5일(수)자 35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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