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기고] 변종현 교수
[경남신문 기고] 변종현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9.2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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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 속에 담긴 역사와 문명의식


  한국 문화는 요즘 세계 많은 나라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외국 관광객들이 서울에 많이 몰려들고 있고, 한국 문화에 대한 열망과 동경 때문에 서울에 정착한 외국인들도 많아졌다. ‘한국이 이처럼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문화 강국으로 자리를 잡게 된 원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 근원적인 힘은 우리 선조들이 남겨 놓은 문화 유산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이 글에서는 한국 한시 속에 담긴 역사와 문명의식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한국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문명(文明) 지향에 의해 전개됐다고 볼 수 있는 바, 특히 원(元) 제국을 거쳐 명(明) 제국으로 진입하는 14세기는 우리 문인 지식인들은 문명의식을 가지고, 주체적·개혁적으로 역사적 변화에 대응했다. 따라서 역사를 움직인 사상적 동력은 지식인의 문명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보다 앞선 시기 진화는 고려 고종 때 서장관으로 왕명을 받들어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그때 지은 시가 <봉사입금(奉使入金)>이란 제목으로 남아 있다.


  西華已蕭索(서화이소삭) 서쪽 중화는 이젠 삭막해졌고

 


  北寨尙昏蒙(북채상혼몽) 북쪽 되놈 오히려 몽매한 채라.

  坐待文明朝(좌대문명조) 앉아서 문명 새벽 기다리자니

  天東日欲紅(천동일욕홍) 하늘 동쪽 해가 붉게 솟으려 하네.

  위 시에서 서화는 한족(漢族)이 세운 송(宋)나라를 말하고, 북채는 송나라를 멸망케 한 요(遼)와 그 뒤를 이어 등장한 금(金)을 말한다. 당시 고려 지식인들은 금나라를 우리 민족보다 열등한 야만족으로 여겼다. 이 작품은 문명의 중심국이었던 중국 송(宋)나라가 쇠망하고 북쪽 오랑캐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우리 고려가 온 천하의 문명을 새롭게 담당해야 할 주체임을 선언하고 있다.

  기구와 승구에서는 문명의 종주국 역할을 하던 송나라가 쇠망한 상황에서 북쪽 오랑캐인 금나라는 아직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현실을 읊었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이 암흑의 현실 앞에서 우리 고려가 국력으로는 금의 세력을 극복할 수가 없어서 앉아 있어야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우월함을 나타냈다. 특히 결구의 하늘 동쪽(天東)이 우리 나라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해(日)는 문명과 문화를 상징하는 어휘로, 우리 고려 문명에 대한 진화의 자부심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오랑캐인 거란의 것은 절대 수용하지 말라는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 이래 보편화된 고려 지식인들의 문화의식을 기반으로 한 시로, 당대 지식인들의 문화적 주체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 나라가 경제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룩하고 문화 강국으로 자리 잡은 저변에는 이러한 우리 선인들의 문명에 대한 자부심과 역사에 대한 주체의식이 바탕이 됐다고 여겨진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6년 9월 23일(금)자 27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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