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내 마음의 시] 정일근 교수
[농민신문 내 마음의 시]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7.06 09: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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⑵이육사의 ‘청포도’

  ‘당신의 칠월은 무엇으로 익어가는가?’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 전문<문장 8월호·1938>

  

   저는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톄링시(鐵嶺市) 조선족 마을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방학을 하자마자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짐을 꾸려 여기로 달려왔습니다.

  조선족 소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조선족 어르신들에게 환하게 웃는 영정사진을 찍어드리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떠나올 때 학생들에게 이육사 시인(1904~1944)의 시 ‘청포도’를 읽어주었습니다.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시작되는 민족의 명시에 대해서는 사족을 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시인이 던진 질문을 이해하고 실천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 질문을 ‘당신의 칠월은 무엇으로 익어가는가?’로 생각합니다.

  청포도 한송이가 익기 위한 불볕 아래서의 ‘노역’을 알지 못하고선 인생의 맛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 청춘의 맛도 그러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역만리 떠나와 저 청춘들이 빚어내는 ‘청포도’ 역시 ‘주저리주저리’ 익어갈 것입니다.
 
  저 청춘들이 땀으로 빚어내는 청포도를 위해 ‘은쟁반’과 ‘모시 수건’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톄링의 7월, 개암이 지천으로 익어가고 있습니다.

<위 글은 농민신문 2016년 7월 6일(수)자 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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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무영 2016-07-07 10:23:56
잘 보았습니다. '당신의 칠월은 무엇으로 익어가는가?' 생각하게 하네요.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오래 전 데모 현장에서 정 시인님과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신상철 교수님이 말리시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저는 78학번입니다. 현재 무역학과 겸임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