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내마음의 시] 정일근 교수
[농민신문 내마음의 시]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6.2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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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정지용의 ‘향수’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름 휘적시든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 끝부분, <조선지광·1927>

 

 장마가 시작된 은현리에서 보내는 첫 시 편지는 충북 옥천 출신 정지용(1902~1950) 시인의 ‘향수’입니다. 시로, 노래로 널리 알려진 국민적인 시이지요. 이 시에서 1927년 조선의 ‘자연’, 즉 농촌을 서정적으로만 느끼신다면 그건 틀렸습니다. 여기엔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일제강점기 농촌의 자화상이 숨어 있습니다.

 이 시를 발표했던 1927년, 정지용 시인은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유학생 신분이었지요. 시인은 고향 옥천이, 고향의 가족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도 ‘향수’입니다. 시인의 노스탤지어는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일’입니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향기로운 시로 남았겠지요.

 시인이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를 연의 끝마다 감탄하듯 반복하지만, ‘사철 발벗은 안해가/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은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지요. 사철 맨발인 가난한 고향, 따가운 햇살의 고통 속에서 이삭만 줍던 배고픈 고향이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이 시가 감동적으로 찾아오는 이유는 그곳이 고향이고, 그곳에 가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누구나 가족이 살고 있는 고향은, 떠나서 생각하면 가슴이 뛰도록 그리운 곳입니다. 차마 꿈일지라도 잊을 수 없는 우리의 고향인 것입니다.

<위 글은 농민신문 2016년 6월 29일(수)자 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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