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기사] 최동호 석좌교수
[문화일보 기사] 최동호 석좌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6.0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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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詩는 노년에 가능’ 헤겔의 말뜻, 古稀 다 돼서야 알겠다”

  시인을 인터뷰하러 가는 마음은 여러모로 뒤숭숭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여파로 사회적 추모 분위기와 함께 ‘묻지마 살인’ ‘여성 혐오’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을 때였다. 또 바로 열흘 전 한강이 국내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의 낭보를 전해옴과 동시에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부지 선정을 두고 지방자치단체의 유치경쟁이 과열돼 어수선한 상태였다. 수시로 온·냉탕을 오가는 사회와 문단의 현실 속에서 시인은 과연 어떤 혜안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지난 3월 제41대 한국시인협회장에 선출된 수장으로서, 한국 문단을 이끌어갈 앞으로의 계획도 듣고 싶었다. 여러 가지 근심을 안은 채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이 바로 옆으로 내려다보이는 한국시인협회 사무실에서 최동호(68) 회장을 만났다. 

  최동호 회장은 맨부커상 수상에 대해서는 “죽음으로까지 몰렸던 한국 소설이 부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반면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에 대해서는 “부지 공모 등 진행과정을 보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은 느낌”이라며 “우리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립문학관은 창조의 산실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물 박물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춘문예 당선 제자만 60명 둔 한국문학 대표 학자

   최 회장은 시인이자 최고 권위의 문학평론가이고 학자다.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6년 첫 시집 ‘황사바람’을 출간했고,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이후 1981년 경남대 조교수를 시작으로 경희대를 거쳐 2013년 모교인 고려대 국문과 교수로 은퇴하기까지 지난 40년간 한국문학의 중심에 있었다.

  스승으로서 최 회장은 깐깐하고 엄격했다. 고려대 재직 시절 별명이 1980년대 인기 미국 드라마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에 나왔던 킹스필드 교수였다. 요령 피우는 학생들에겐 가차 없이 ‘벌’을 내렸다. 과제를 많이 내줘 공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국문과 제자들과 ‘밀당’을 했다. 제자들이 인근 어느 막걸리집에서 놀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면 그 다음 날 바로 산더미 같은 리포트를 내줬다. 하지만 ‘당근’도 줬다. 도서관에 있다는 얘기가 들리면 마구 조였던 끈을 슬쩍 풀어주기도 했다.”

  엄한 가르침 속에 최 회장의 제자들은 문단의 주인공으로 속속 데뷔했다. 각종 신춘문예에 당선된 제자만 60명에 이른다. ‘최동호 사단’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붙는 사람이 있으면 떨어지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한 번은 제자들과 겨울 북한산을 오른 적이 있다. 그때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람은 뒤풀이 음식점에 미리 가서 기다리도록 했고, 탈락한 사람은 지옥 같은 등반을 끝내고 합류하도록 했다. 낙방의 슬픔도 털어내고 동시에 다음엔 붙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이날도 최 회장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 후 수원 팔달구 행궁동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회장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제자들이 마련한 축하연이었다. 최 회장은 지난 2012년 11월부터 고향인 수원에 자신의 이름을 건 ‘수원 남창동 최동호 시인 문학창작교실’을 문단 후배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 자리에 모인 40여 명의 제자는 스승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수원은 내 시(詩)의 고향

   최 회장이 고려대 교직 은퇴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고향 수원에 시 창작교실을 만든 것이었다. 벌써 4년째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2시간씩 무료로 수원 팔달구 신풍동 SK도서관에서 시 창작교실을 진행하고 있다. 박주택·맹문재 시인, 방민호 문학평론가 등 제자와 후배들의 ‘재능기부’ 도움을 받고 있다. 한번에 수강생이 60∼70명이 몰릴 만큼 관심과 열기가 높다. 8기생을 배출했다. 이 중에서도 신춘문예 당선자가 나왔다.

  “처음 수원에 창작교실을 연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색안경을 끼고 봤다. 정치하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스러워했다. 순수한 봉사라고, 고향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지만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선, 2016년 4월 13일 총선이 나와 상관없이 지나가면서 드디어 사람들이 내 진심을 이해했다.”

  최 회장이 수원에 애착을 갖는 건 수원 남창초교를 다녔던 유년 시절에 시인의 꿈을 키웠기 때문이다. 그는 세관 공무원이라 전근이 잦았던 부친과 떨어져 외가가 있는 수원에서 살았다. 홀로 남은 그에게 수원 팔달산은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지금도 종종 팔달산에 가보곤 한다. 남창초 골목길도 누빈다. 그러면 그렇게 아늑하고 편안할 수가 없다. 수원은 소년 최동호가 시에 눈뜬 곳이다. 그래서 은퇴 후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지훈·정한숙의 제자, 김달진의 사위

   최 회장이 시인의 꿈을 구체화한 것은 서울 양정고 시절이다. 역사와 철학에 심취해 있던 고2 때의 어느 날 친구가 낭독한 한용운의 시를 듣고 마음이 뭉클해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렇게 해서 진학한 게 고려대 국문과였다. 그곳엔 ‘청록파’ 조지훈 시인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조지훈 교수가 최 회장의 첫 문학 스승이 됐다.

  “1968년 5월 조지훈 선생님이 별세하신 후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 장지로 갈 때 영정 사진을 들었다. 그때 수많은 팬이 묘소에 미리 와 있는 걸 보고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시인에의 결심을 또 한 번 굳힌 계기가 됐다.”

  최 회장은 은사의 뒤를 이어 고려대에서 시론을 강의했고, 시인협회장에 올랐다.

  조지훈이 최 회장에게 시인에 대한 초심을 갖게 했다면 대학원 은사였던 정한숙 교수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정 선생님은 시인이 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내 인생의 지표를 제시해주신 분이다. 마치 자신의 자식처럼 뜨거운 사랑을 보여주셨다.”

  최 회장은 또한 1930년 ‘시인부락’의 동인이자 한문학의 대가인 김달진의 사위다. 김구슬 협성대 교수와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지난 30년간 ‘김달진문학상’을 이끌어온 것도 장인 김달진의 덕이었다.
 
  “아내와 사귀다가 헤어질 뻔한 위기가 있었는데 장인이 내가 쓴 시를 보고 괜찮은 사람인 것 같으니 잘 사귀어 보라고 응원해주셨다. 또 두 딸(최소담-단아)의 이름도 한글로 직접 지어주셨다. 내 나이 마흔에 김달진문학상을 만들어서 지금껏 꾸려왔는데 앞으로도 이 상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김달진문학상은 시인이며 한학자인 김달진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년에 제정됐다. 매년 시와 평론 부문에서 수상자를 내고 있다. 올해 제27회 시상식은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6월 3일)과 경남 창원(9월)에서 잇따라 열린다.

  ◇김광석을 좋아하는 노래하는 시인

   최 회장은 문학의 힘을 믿는 긍정주의자다. 특히 관념 속에서만 머물던 딱딱한 시를 대중 앞에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시와 대중가요의 결합이다. 최 회장은 요즘 시를 쓰면서 동시에 시를 노래로 만드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시인들만 누리는 시여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고루 즐기기 위해 시도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6년에 쓴 시 중에 ‘불꽃 비단벌레’라는 시가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본 신라 시대 말 안장 뒷가리개 유물에 사용된 비단벌레 장식의 아름다움에 빠져 쓴 시다. 그런데 최근 이 시에 원로 작곡가 김희갑 씨가 기타 반주의 곡을 붙였다. 내 시를 보고 곡을 붙이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타타타’로 유명한 김국환의 아들이자 가수 김기형 씨가 초연을 했다. 연말쯤 정식 앨범으로 나온단다. 시가 활자문학의 시대라면 이젠 디지털 매체를 통한 음유시인의 시대가 왔다.”

  최 회장은 평소 대중가요와 팝을 즐긴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좋아한다. 인생에 대한 고민을 담은 가사에 감동받았다. 정미조의 ‘개여울’도 그렇다. ‘개여울’은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정지용의 ‘향수’도 노래로 만들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 좋은 시, 좋은 노래 하나가 사회에 이바지하는 힘은 상상 이상이다. 지금처럼 ‘묻지마 살인’이 끊이지 않는 사회에서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다. 시는 강력하고 깊숙한 소통의 수단이다.”

  ◇시인협회 60주년, 시작 활동 40주년…“더 좋은 시를 쓰고 싶다”

 

  최 회장은 1976년 첫 시집 이후 지금껏 8권의 시집을 냈다. 최근작은 2013년 발표한 ‘수원 남문 언덕’.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을 담았다.

  요즘도 열심히 시를 짓고 있다. 2013년 이후 약 50편 정도 썼다. 이를 모아 내년 봄쯤 9번째 시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노래시집도 고려하고 있다. ‘팔달산 아이들’ ‘아우라지 간이역’ 등은 이미 정덕기 가곡작가에 의해 노래로 재탄생했다. ‘불꽃 비단벌레’ 등을 합쳐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미학’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정말 좋은 시는 노년에 가능하다. 단, 그가 젊은 시절에 열정을 갖고 있었다면’이라고 말한다. 이제야 그 말의 참뜻을 알겠다. 제자들을 길러내고 사회봉사를 하면서 더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다.”

  2017년은 시인협회 탄생 60주년이다. 그는 이 시기에 회장을 맡은 책임이 막중하다고 느낀다. 협회 60주년에 맞춰서 세계시인대회를 추진 중이다. 지금부터 준비해 내년 말쯤으로 계획하고 있다.

  “한·중·일은 물론 북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 적어도 10개국 이상에서 문인들을 초청해 대회를 열 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급 문인 섭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 소설에 이어 시의 힘도 보여주겠다.”

  최 회장은 기나긴 인터뷰의 말미, 아쉬운 듯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서운한데 그냥 보낼 수 있나. 근처에 발효음식 좋은 곳이 있으니 막걸리나 한잔하고 가소.” 

<위 글은 문화일보 2016년 6월 1일자(수) 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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