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5.1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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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칼럼]곡성의 역발상

  으스스한 영화 '홍보 수단'삼은 곡성군…통념 맞선 용기·너그러움 가치 일깨워

  "영화 곡성(哭聲)을 보고 공포가 주는 즐거움을 느낀 분이라면 꼭 우리 곡성(谷城)에 오셔서 따뜻함이 주는 즐거움을 한 자락이라도 담아갔으면 좋겠다." 곡성군수의 언론 기고문이 화제다. 으스스하고 어두운 범죄스릴러 곡성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섬진강의 곡성을 알리는 계기로 만들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영화가 종교나 지역 등 단체를 모티브로 내용을 어둡게 그릴 경우 쏟아지던 반발을 예상하던 우리에겐 신선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과 SNS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 군수의 역발상과 멋진 문장을 연일 크게 다루었다. 무서운 영화로 지역 지명도가 무섭게 올라갔다. 이름 때문에 부담스럽던 영화를 이제는 곡성군이 고마워해야할지 모르겠다.

  역발상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절박함에서 나오지만 그 바탕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용기와 상대를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너그러움에 있다. 곡성 얘기를 듣고 있으니 지금은 사천시로 통합된 삼천포가 생각난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나오면 으레 해당 지역에서는 논란이 있었다. 방송 중에 누가 이런 발언을 하면 지자체가 강력하게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내던 기억이 있다. 〈응답하라 1994〉로 다시 우리에게 회자된 삼천포는 아름다운 포구와 맛난 수산물만큼 이름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카피가 2000년에 등장하자 난 무릎을 쳤다. 지자체의 지역홍보 경쟁이 본격화되던 시점이었고 웰빙과 힐링이 키워드로 등장한 시점이었다. '잘 나간 당신 삼천포로 빠져라'는 역발상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중원에서 벗어나 귀양 보낸다던 중국 귀양이 청정 휴양 관광지로 새삼 주목받는 오늘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존심은 지역 정체성의 지렛대다. 하지만 사람들의 익숙한 통념이라는 강력한 힘과 맞설 때에는 역발상의 뒤집기가 필요하며 이것은 창의의 한 수이다. '네, 잘 빠집니다. 그러니 푹 쉬고 가십시오,' 통념의 수용이자 새로운 관점의 제시다.

  멋지고 자랑스러운 것을 알리는 명성경쟁은 당연하고 치열하다보니 아프고 숨기고 싶은 것을 드러내는 어두운 관광도 시도된다. 미국 남부의 명소들은 끌려온 흑인 노예의 고난사와 밀접하고 중부의 관광지는 강제 이주한 아메리칸 원주민의 눈물의 고행을 보여준다. 터전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36주기를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또다시 논란이다. 1997년 정부 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2008년까지 해마다 참석자 모두 함께 부르던 공식 제창이 이명박정부 시기였던 2009년 공식 식순에서 제외되어 식전행사로 밀렸으며 2011년부터 제창이 공식 폐지되었다. 2013년 여·야 의원 158명이 합의로 기념곡 지정 결의안을 통과시켰음에도 정부는 아직도 입장을 미루고 있다. 보훈처와 청와대의 역발상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를 지키려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진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노래를 목 놓아 부르게 하자. '네, 부르십시오. 그리고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와 이견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이 바로 흩어진 국민의 마음을 모으는 길이다.

<위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6년 5월 16일(월)자 11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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