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칼럼] 임춘택 교수
[국민일보 칼럼] 임춘택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6.02.0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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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사랑으로 영원한 사랑을 꿈꿀 권리

  성경은 줄곧 이혼을 반대한다. 예수님은 모세의 이혼 증서에 대해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말씀으로 질책하셨다. 예수님은 부부가 시련과 역경을 성실한 사랑으로 극복하고, 아름다운 관계로 이어가 영원하길 바라신다.
 
  결혼은 서로에 대한 성실한 사랑이다.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지속하는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문학적 서사 구조로 형상화했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극찬을 받았고 헤세도 이 작품의 작가에게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바로 요한 페터 헤벨(J P Hebel·1760∼1826)과 그의 작품 ‘뜻밖의 재회’이다.

  스웨덴 팔룬 산간 지역에 한 젊은 광부와 곧 그의 아내가 될 신부는 설레는 마음으로 결혼식을 준비한다. 둘은 어둠이 가장 긴 동짓날 교회에서 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녀는 빨간 실로 가장자리 전체를 감싼 검정색 바탕의 목도리를 신랑을 위해 손수 짠다. 결혼식 며칠 전 젊은이는 검은색 광부 옷이 수의가 될 줄도 모른 채 그녀의 창문을 두드리며 아침인사를 건넸지만 그날 저녁인사는 하지 못했다. 신랑이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그녀는 그를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 사이 포르투갈 리스본 지진, 황제 프란츠 1세 서거, 미국 독립, 프랑스 혁명, 영국의 코펜하겐 폭격과 같은 당시 유럽인들에겐 익숙한 역사적 사건들이 등위 접속사 ‘그리고’로 16번 무상한 듯 이어진다. 이처럼 50년을 거시적 초점에서 처리한 카메라 앵글은 다시 팔룬을 향한다. 농부는 씨를 뿌렸고 수확했고 광부들은 광맥을 찾아 땅을 파들어 갔다.

  1809년 하지쯤 팔룬의 광부들은 수직 갱도 200m 아래에서 녹반에 흠뻑 젖어 전혀 썩거나 변하지 않은 시체 하나를 파냈다. 작업 중 잠시 잠들었던 것처럼 얼굴 모습과 나이까지 완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주름 가득한 백발의 그녀는 단번에 신랑을 알아보고 고통보다는 기쁨의 감격으로 그의 시신을 감싸 안는다. 야위고 쇠약해진 옛 신부에게는 젊은 사랑의 불꽃이 다시 한 번 깨어났지만 아직도 젊음의 아름다움을 지닌 신랑은 미소를 짓지도 입을 열지도 눈을 뜨지도 않았다.

  그녀는 화사한 예복 차림으로 장례식에서 50년 전에 짰던 목도리를 신랑에게 둘러준다. 교회 마당에 마련한 무덤에서 그녀는 신랑에게 말한다. “신방이 선선하지만 편히 주무세요. 한 열흘정도 오래 기다리지 않아 저도 곧 갈게요. 금방 우리에게 낮이 올 거예요. 땅이 한 번 돌려주었으니 두 번 다시 거두어가진 않을 거예요.”

  작품은 성실하고 영원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들로 가득하다. 이들의 재회는 마치 결혼생활 50년 부부의 은혼식과 같다. 곧 따라간다는 신부의 말에서 이들의 사랑에 시간의 한계는 무효해진다. 신랑의 죽음을 상징하는 목도리의 검정 바탕색은 신부의 불꽃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빨간 색으로 감싸진다. 신랑의 변하지 않은 모습은 신부의 변함없는 사랑이 투사된 결과인 것이다.

  생인과 망인 간 포옹의 서사 공간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의 그것처럼 섬뜩하지도 기괴하지도 않다. 오히려 무덤은 드디어 신혼 방이 되어 미적인 입체감으로 환히 밝혀진다. 땅이 한 번 돌려준 신랑을 두 번 거두어가진 않는다는 신부의 말에 기독교 세계관의 부활신앙이 깃들어 있다. 이 땅의 성실한 사랑과 천국에서의 영원한 사랑이 이어지는 순간이다.

  인간은 부부, 자식, 부모형제, 지인들과의 영원한 사랑의 삶을 꿈꿀 권리를 가진 존재이다. 근래 이혼 의사를 신문지상에 공개한 남편에 대해 ‘내 잘못이기에 책임지고 남편과 가정과 아이까지 지키겠다’고 말한 그 아내의 결단력 있는 태도는 영원한 사랑을 꿈꿀 권리를 밝힌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려는 제자다운 모습이다. 이혼 문제로 신음하는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된다.

<위 글은 국민일보 2016년 1월 30일 (토)자 21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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