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칼럼] 임을출 교수
[매일경제 칼럼] 임을출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2.0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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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재평가와 대북정책 리모델링

  요즘 북한 내부가 변화하는 속도와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변화를 상징하는 키워드들을 골라봤다.

  돈주, 자영업, 건설 붐, 국산화, 온라인 쇼핑몰, 부동산 등 각종 시장, 휴대폰, 전자결제카드, 경제개발구, 위락시설, 우주과학기술 등. 일부 현상은 이전부터 불거진 것들이긴 하지만 김정은 시대는 아버지 김정일 시대와 확연히 다르다. 김정은 정권은 이른바 사회주의 문명국가의 전형을 보여주겠다는 태도다. 그리고 북한은 예고한 2016년 5월 당대회에서 변화의 정점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날 북한에선 신흥 부유층이라 불리는 돈주들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물론 이들 돈주는 당국 통제 아래 놓여 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이들 영향력은 더욱 커졌고 세졌다. 북한 내 소비 주도층은 10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북한 경제의 유통, 투자, 생산, 무역, 사금융을 장악하고 이끄는 핵심 주역이다. 북한에서 휴대폰 사업을 전개 중인 이집트 통신사는 휴대폰 가입자가 약 3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200만명을 넘은 것은 2013년 5월. 2년 반 만에 1.5배로 늘어난 셈이다.

  탈북자 면접조사에 따르면 실제 휴대폰 사용자는 500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평양은 물론이고 시골 청년들도 휴대폰을 갖고 있지 못하면 연애하기도 어렵고, 친구들 사이에서 무시당한다. 휴대폰 구입 가격과 각종 기능 사용료 등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휴대폰을 마치 액세서리처럼 소지하고 다닌다.

  김정은 체제는 이전보다 경제 사정이 꽤나 나아졌고, 시장경제 수준도 상당 수준 진전돼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김정은 체제가 국정 기조로 내세운 경제·핵 병진 노선의 결과물이고 실체이기도 하다. 핵 무력을 증강시켜온 것도 사실이지만 놀랄 만한 경제·사회적 변화를 견인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런 변화는 갑작스러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곧바로 이어진 3대 권력 세습, 세대 교체와 숙청, 3차 핵실험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라는 최악의 환경에서 이뤄낸 변화와 성과라는 점에서 우리는 김정은 체제의 성격과 역량을 냉정하게 재평가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북한은 내년 5월 초 26년 만에 당대회를 연다. 지금까지 패턴이라면 김정은은 국제사회에 또 다른 변신을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여태까지 내부 정치 안정, 군사력 증강에 주력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변화를 시도했다면, 2016년에는 인민 생활 향상에 보다 주력하면서 경제강성대국의 면모를 보여주려고 할 것 같다.

  북한 매체들은 7차 당대회가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당 창건 70주년 육성연설에서 김정은은 `인민`이란 단어를 90여 회 사용했다. 이른바 김정은식 애민정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셈이다. 물론 구호와 현실 간에 괴리는 늘 존재한다. 하지만 지난 4년간 보여줬던 성과들을 보면 나름대로 실천력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 내부에서 숨 가쁘게 벌어지고 있는 변화들이 김정은 정권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북한 지도부는 아직까지는 이런 변화들을 관리 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북한은 갈수록 딜레마에 봉착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전 인민이 거의 상인화돼 버린 북한에서 개혁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고, 주민들 욕구는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김정은 체제는 인민의 심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보다 수준 높은 주민 생활 개선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서는 대외 안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 미국과 평화협정 공세를 이어가면서 중국과는 관계 복원을 도모하고, 우리와도 일정한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최근 북한 측 대남 민간 교류 창구인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관계자는 우리 측 대북지원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임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인민 눈높이가 달라졌고, 이에 발맞춰 국가 정책도 바뀌고 있다. 따라서 이후 남북 간 협력사업도 인민 생활 수준에 적합한 사업이 돼야 한다." 북한의 변화에 발맞춰 우리 대북 정책도 크게 변해야 할 전환점에 이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위 글은 매일경제 2015년 12월 09일 (수)자 39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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