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칼럼] 최동호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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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1.2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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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의 시인정조... 수원화성·21] 만년제에서 풍년을 기리다

  음 이월 추정, 농가 모습 잘 그려
  백성과 하나 된 기쁨 직접적 표현

  1795년 북쪽 지역에 만석거를 건설한 정조는 1798년 현륭원과 가까운 남쪽 지역에 만년제를 축조했다. 만년제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둑을 쌓고, 그 위에 버드나무와 소나무를 심거나 떼를 입혔다. 은구(隱溝)를 설치했으며, 비용은 내하전(內下錢) 6천 냥으로 충당했다.

  신읍의 경영을 위해 정조는 경제적 기반의 확보와 백성들의 생활 안정을 목적으로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관개용수를 위한 제방을 쌓았으며 상권을 조성하고 식림사업(植林事業) 등을 전개했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한 것은 지극한 효심의 발로이기는 하지만 이와 함께 그 지역의 일반 백성들의 생활도 풍요롭게 하는 정책적인 배려를 했다는 사실은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만년제의 길목 위에 서 있으니 / 萬年堤上路
  기나긴 날 들리는 수레 방울 소리 / 遲日駐鑾聲
  경사로워라 금쪽같은 곡물 나르고 / 吉慶輸金粟
  풍년에는 옥 같은 벼 마주 하겠네 / 豐穰對玉秔
  빈풍엔 새참을 내어다 함께 먹고 / 豳風來午饁
  주나라 군대엔 새 백성을 보노라 / 周旅聽新氓
  두 동이 술에 봄눈 녹듯 풀리어 / 朋酒如春解
  솜씨 다투어 덩실덩실 춤을 추네 / 爭將舞袖呈

  위의 시는 채제공의 ‘만년제에서 농사를 구경하다’의 시운을 차용한 작품이며, 백성들과 함께 풍년을 고대하는 정조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제 5행에 보이는 ‘빈풍’은 ‘시경’ 속 ‘빈풍’ 중 ‘7월’장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주공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작품이며 이 장에 수록된 시편들은 농사를 권장하는 노래다. 특히 백성들과 하나가 된 제왕의 기쁨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구절이 위의 시 후반부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은 시의 문면으로 보아 아마도 해가 길어지고 농사일로 수레 방울 소리가 요란해질 무렵인 음 이월로 추정된다.

  농사일이 시작돼 두 동이 술로 고된 노동을 녹이고, 힘써 일해 앞으로 다가올 풍년의 기쁨을 맞이할 그날을 연상하며 쓴 것이라 해석된다. 마지막 7·8행의 구절에서 우리는 농사를 대본으로 하던 시대 백성들과 하나가 되어 춤추고 노래하는 기쁨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조의 애민 사상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시인 최동호 교수

<위 글은 경인일보 2015년 11월 23일 (월)자 17면에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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