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칼럼] 최동호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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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0.2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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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의 시인정조… 수원화성·16] 어찌 침원을 작별할 것인가

  현륭원 떠올라 발길 쉽게 못 옮겨
  신풍루 앞 굽은 길로 천천히 귀궁

  사도세자의 비극을 다룬 영화 ‘사도’의 관객이 6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영조와 사도의 대립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실록의 기록을 최대한 살리면서 두 사람의 성격적 차이가 비극적 죽음을 가져왔음을 부각시켰다.

  영화는 영조와 사도의 성격 차를 극한의 갈등으로 끌어가는데 성공했지만 혜경궁 홍씨나 사도의 아들 정조를 잘 그려낸 것 같진 않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조가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장면은 부자의 비극을 치유하는 장면이라기보다는, 길고 불필요한 장면으로 보였다.

  무더위가 시작된 지난 7월 말 행궁의 상단부에 있는 ‘미로한정’에 올라 신풍루를 내려다 본 적이 있다. 신풍루 앞길은 다음 시에서 정조가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구불구불해 보였다. 요즘 도시를 건설할 때 흔히 사용하는 직선의 길이 아니라 굽은 곡선의 길이라는 사실이 지금과 달라 이상하기까지 했다.

  신풍루 앞길은 꼬불꼬불하여 더디구나 / 新豐樓下路逶遲
  남쪽서 북쪽을 바라보는 시를 읊조려 본다 / 爲誦南來北望詩
  장락궁 종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니 / 長樂鐘聲知不遠
  어찌 내가 침원을 작별할 수 있다는 말인가 / 那堪回首寢園辭

  위의 시는 채제공의 ‘병진년(1796)시축’에 있는 ‘환궁(還宮)하던 날’의 시운에 화답한 것이다. 장락궁은 바로 1년 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거행한 장소다.

  장락궁의 종소리는 해가 기울어 돌아갈 길을 재촉하는 것 같지만 정조는 이 소리를 듣고 오히려 사도세자가 묻힌 현륭원을 떠올리며 머리를 돌려 궁으로 돌아가는 발길을 쉽게 옮기지 못했다.

  장락궁에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남쪽은 현륭원, 북쪽은 도성의 궁이라 보고 장락궁은 그 중간에 위치한 것으로 해석할 때 장락궁의 종소리가 도성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는 시행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첫 행에서 말한 대로 신풍루 앞의 구불구불한 길은 장락궁의 종소리와 더불어 행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정조의 마음을 잘 나타낸 상징적 기호다.

  영화 ‘사도’가 그리고 있는 것처럼 정조가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다면,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던 아버지의 애처로운 목소리를 남겨 두고 어찌 쉽게 떠날 수 있었겠는가.

  / 시인 최동호 교수

<위 글은 경인일보 2015년 10월 19일(월)자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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