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10.1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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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의 위대한 정신, 미리 준비할 때다

  경제위축에 어려운 이는 더 느는데

  세법 개정으로 기부금 감소 불보듯

  작은 나눔 실천 우선 나부터 시작을

  월급생활자의 즐거움은 제 날짜에 급여를 받는 일에 있다. 필자는 30여 년 전 첫 월급으로 현금이 들어있는 월급봉투를 내 손으로 받았던 기억이 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은행계좌가 월급을 대신받기 시작했다. 마치 은행계좌가 내 월급의 주인인양 돼 버린 것이다.

  은행이 UMS(Unified Messaging System 통합메시징시스템)를 제공하면서 휴대전화에서 월급금액과 통장잔액까지 뜬다. 인터넷을 통해 월급시스템에 들어가면 내 월급에 대한 자세한 명세서도 제공된다. 명세서에는 내 노동에 대한 내역이 일원도 틀리지 않게 기록돼 있다.

  그 내역에서 국가가 세금을 왕창 들고가는 일에는 화가 나지만, 적은 금액이지만 다달이 여기저기 기부하는 금액의 내역을 보면 일하는 내 즐거움을 세계와 지역사회 등과 나누고 있는 것에 다소 위안을 받는다. 그 기부금으로 연말정산 때면 세금혜택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런 기쁨은 사라졌다. 지난해 ‘세금이 최상의 기부’라고 생각하는 정부가 세제개편을 하면서 연말정산을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2013년까지 국민의 기부금은 소득공제 방식으로 공제를 받는 ‘착한 일’이었다. 가령 고액소득자가 기부하면 주민세 3.8%까지 더해 최고 기부금의 41.8%까지 세금을 되돌려 받았다. ‘착한 손’에 대한 정부의 존중이며 배려였다.

  이젠 아니다. 기부금을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공제율을 3000만원 이하는 15%, 3000만원 이상은 25%로 확 낮췄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고액기부자가 100억원을 기부하면 41억8000만원을 환급받았는데, 이제는 24억9700만원으로 16억8300만원이나 줄어들게 됐다. 세금에 혈안이 된 정부가 우리의 기부문화를 갈아 엎어버렸다. 다시 말하자면 정부가 직접 돕지 말고 세금이나 더 내라고 외치는 꼴이다.

  지난해 한국재정학회는 세법 개정에 따라 한 해 세금이 3057억원 늘어나 박근혜 정부의 주머니를 채워주겠지만, 어둡고, 춥고,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온정의 주머니에서는 2조376억원이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망은 적중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만 봐도 직장인 정기 기부자가 지난해 11만2502명에서 6만4396명으로 42% 줄었다. 이런 현상은 연말로 갈수록 심각해져 기부자 절반 이상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올해는 유난히 일찍 추위가 찾아온다고 한다. 긴 겨울이 예고되는 가운데 따뜻한 등불 같은 기부금마저 끊어지면 이웃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연말정산에 ‘뿔난’ 봉급생활자들의 작은 온기마저 줄줄이 빠져나가는 사태로 이어지지 않을는지.

  세계적인 부호 워렌 버핏은 ‘열정은 성공의 열쇠고, 성공의 완성은 나눔이다’고 했다. 또한 ‘그동안 살아오면서 즐거웠던 기억들만 남기고, 나머지 모든 것은 사회에 모두 돌려주라’고 했다. 고액 기부자들이 실천할 기회를 정부가 빼앗아서는 안 된다. 정부도 해결 못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돕는 그들의 실천을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올 연말에는 우리 지역에 기부와 온정이 넘치길 바란다. 지역경제의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를 돕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십시일반’이란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이 더 먹을 수 있는 분량이 된다는 말이다. 거대한 모금보다 십시일반의 위대한 실천이 필요한 때다.

  봉사는 생색이 아니다. 또한 봉사에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추워지기 전에 시작해야 추위에 대비할 수 있는 법이다. 물론 나부터, 당신부터 앞장서야겠지만.

 

<위 글은 경상일보 2015년 10월 16일(금)자 1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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