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신문 칼럼] 윤진기 교수
[법률신문 칼럼] 윤진기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9.2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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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 또 다른 미래를 말하다

  - 「중재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입법예고와 관련하여

  법무부는 지난 8월 3일 '중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하였다. 개정안은 중재대상의 범위 확대, 중재합의의 서면 요건 완화, 임시적 처분의 집행가능성 인정, 중재판정 집행절차의 간소화, 중재판정부의 증거조사에 대한 법원의 협조 강화, 대법원장 중재규칙 승인권의 폐지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행 중재법은 1999년에 개정된 것이다. 그 동안 국제중재환경이 바뀌어 UNCITRAL(UN Commission on International Trade Law-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 모델중재법도 2006년에 다시 개정되어 우리나라 중재법 개정의 필요성이 절실하였는데, 그 동안 법무부에서 중재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중재법 개정안을 초안하였고, 한국중재학회에서도 지난 2014년 7월에 중재법 개정을 위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여 국제적인 관점에서 중재법의 개정을 논의한바 있다.

  필자는 중재법이 개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 중재제도의 선진화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 중재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우리나라의 미래와 관련이 있다. 중재를 단순한 분쟁해결제도의 하나로 이해하면 효율성만 제고하면 될 것이지만, 중재를 국가 발전전략의 일환으로 취급하면 제도의 효율성 이상의 것이 고려되어야 한다.

  중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아시아 각국은 아시아의 중재패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중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아시아의 세기가 눈앞에 전개되고 있어서 야망에 넘치는 아시아 국가들의 행보가 보통사람들의 눈에도 예사롭지 않을 정도로 공공연하고 활발한 지금, 한번 중재패권을 장악하면 그것이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반대로 한번 중재패권을 상실하면 그것을 도로 찾아오기는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중재패권을 쥘 수 있는지의 여부는 중재 경쟁력에 달려 있다. 다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중재 경쟁력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서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중재 경쟁력을 제고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안이 중재법의 선진화이다. 국제중재에 관한 2010년 퀸즈메리대의 보고서에 의하면, 당사자들이 중재지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로 적용법률, 즉 중재법을 꼽고 있다. 그래서 중재법이 선진화되어야 중재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말을 하는 것이다.

  개정안에서 임시적 처분의 정의, 요건, 절차 등을 명확히 규정하고, 법원을 통해 중재판정부에서 내린 임시적 처분을 집행할 수 있게 하는 등 2006년 모델중재법의 핵심적인 내용을 대폭적으로 도입한 것이나, 중재판정의 집행을 변론이 필수적인 '판결'이 아닌 '결정' 절차를 통해 신속·간이하게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중재법 선진화의 중요한 요소이다.

  무엇보다도 중재기구 중립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세계적인 중재기구들과 마찬가지로 중재기구가 규칙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대법원장의 중재규칙 승인권을 폐지한 것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사법부의 중재규칙 승인권은 다른 상사중재기구의 진입을 막아 우리나라 상사중재가 대한상사중재원 중심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 유수의 상설중재기관이 각기 소재국 법원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중재규칙을 제정하고 있는 국제기준에도 어긋나고 오히려 중재기관의 중립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소지도 제공해 왔다. 우리의 중재 경험이 이미 많이 누적되었고, 대한상사중재원도 이미 국제적으로도 신망 있는 중재기관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이제 따뜻한 보호자의 품을 떠나 거친 경쟁의 세계로 나아가서 사법부의 보호 없이 아시아의 다른 중재기관들과 경쟁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중재를 활성화하는 것은 중재를 선진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국내적으로 중재를 활성화하는 것은 당면한 사법정체 현상을 해소하고 고질적인 국가의 갈등지수를 낮추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에서 중재대상의 범위를 재산권상의 분쟁 외에도 '당사자가 화해에 의하여 해결할 수 있는 비재산권상의 분쟁'도 중재로 해결할 수 있도록 분명히 하여 중재의 대상이 되는 분쟁의 범위를 확대하고, 중재로 분쟁을 해결하기로 하는 합의가 반드시 서면에 의하지 않더라도 유효하도록 중재합의 요건을 다소 완화한 것은 중재 활성화를 위하여 중요한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소송이 제기된 사건의 97%를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대체적 분쟁해결)에 의하여 해결하고 있다는 연구가 국내에 소개된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최근의 자료는 더 나아가 미국에서는 소송사건의 1%만 판결로 최종 해결되고 나머지 99%는 ADR에 의해서 해결된다는 것을 구체적 수치까지 거론하며 제시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대법관 한 사람이 일 년에 3000여 건의 판결을 해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여 사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혜를 모으고 있는 사정과 비교하면 부럽기조차 하다.

  걸핏하면 소송을 하겠다고 나서는 미국인들이 이렇게 효율적으로 분쟁을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1970년대 법조계와 학계에서 '대체적 분쟁해결 운동'(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Movement)을 전개하고, '대체적 분쟁해결법'(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Act) 같은 멋진 법률을 제정하여, 법원에서조차 소송보다 중재와 조정을 권고해온 결과이다. 중재는 ADR의 가장 핵심적인 분야이다. 국내에서 중재를 활성화시키고 아울러 조정과 같은 다른 ADR도 동시에 활성화시켜 나가면 우리나라 분쟁해결의 경직성이 대폭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중재에 거는 기대와 희망이 크다. 중재가 또 다른 미래를 우리에게 열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재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중재를 단순한 분쟁해결의 수단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가 중재법을 선진화하고, 미국 수준의 대체적 분쟁해결 입법을 만들 줄 아는 지혜가 있다면 중재는 국가 발전 전략의 한 축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중재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중재의 선진화를 지향하고 있는 이번 '중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조속히 통과되어야 할 것이다.

 

[원문 링크]

https://www.lawtimes.co.kr/Legal-Opinion/Legal-Opinion-View?Serial=95579&kind=BA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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