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9.1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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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오디세이의 진화 기대하며

  자연과 관객이 함께 만들어갈 위대한 작품

  울주는 무궁무진한 공간 많이 보유한 지역

  한국적이며 세계적인 감동·몰입 가져올 것

 

  울산의 가을은 울주의 산군(山群) 산정에서부터 조용조용 내려온다. 이른바 해발 천 미터 이상의 산군들이 모여 있는 ‘영남 알프스’가 울산 가을의 푯대며 전령사인 셈이다. 올핸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하마 억새들의 이삭이 아름다운 은빛으로 패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 발품을 팔아 그 산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요란한 도시보다 고독한 산 위에 가을이 제일 먼저 도착해 깊은 생각의 바다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울산은 도시 이름에 산(山)을 가지고 있다. 울산은 산이 있어 아름다운 도시다. 산이 있어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도시다. 울산의 산들은 울산의 경계다. 그러나 그 경계는 거대한 벽이 아니다. 그건 도전이 될 수 있으며 사유의 공간으로 전환될 수 있다. 어느 시인이 말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지금 그 경계에 억새가 패고 있다. 억새의 이삭이 바람에 풍화하며 ‘무릉도원’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울산의 산이 울산의 ‘자산’이라면 그 산 위의 억새는 ‘자원’이다. 울주문화예술회관이 ‘무대’를 신불산 간월재로 번쩍 들어다 옮겨 해마다 ‘울주 오디세이’를 펼치고 있다. 세트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자연이 배경일 때, 자연과 관객이 함께 호흡할 때, 위대한 작품은 만들어지는 법이다.

  ‘울주+오디세이’의 답은 무한하다.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다. 호메로스의 작품이지만 울주 오디세이는 산과 억새와 사람의 작품이다. 울주 오디세이는 신화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의 만남이다. 그 만남을 위하여 배내골이나 간월산장에서 2~3시간의 산행을 감내해야 한다. 무대까지는 땀 흘리는 노고가 없이 찾아갈 수 없다. 묵묵히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만 울주가 들려주는 오디세이를 귀 열고 들을 수 있다.
 
  제6회 울주 오디세이 초대장을 받았다. 10월3일 낮 12시 신불산 간월재 특별무대다. 바야흐로 억새가 절정인 때며 하늘이 열리는 개천절이다. 해발 1000미터에 무대가 마련되고 빈 스타일의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질 것이다. 이번 울주 오디세이의 음악감독은 피아니스트며 작곡가인 양방언이 초대됐다. 양방언은 울주 오디세이를 위해 동명의 주제곡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 지난 번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프레페스티벌에서 잠시 귓가를 스친 양방언의 피아노 소리는 환상적이었다.

  내 마음에 20년 동안 남아있는 연주가 있다. 일본의 키보드 연주자 겸 작곡가인 기타로(喜多郞)가 일본의 고대설화를 음악으로 만든 ‘고사기’ 연주였다. 그 연주를 들으며 우리의 ‘삼국유사’가 음악으로 만들어질 날을 꿈 꾸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스 출신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야니의 연주 역시 그랬다. 야니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감동의 선율을 선물했다. 야니의 연주를 들으며 우리는 왜 문화재를 보호하려할 뿐 위대한 무대로 제공하지 않는지 안타까워했었다.

  울주 오디세이는 아직 시작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더 큰 가능성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음악의 장소성은 중요하다. 그건 몰입과 감동을 동시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장치다. 울주 오디세이는 산 위의 음악이지만 울주는 울산의 국보와 보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가령, 반구대 암각화나 처용암 부근에서 신화와 음악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의 음악은 감동의 진폭이 클 것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며 세계적이라는 명제에 부합될 것이다. 울주 오디세이가 젊은 시절의 내 영혼을 흔들어 놓았던 기타로나 야니의 연주회 못지않은 감동의 음률을 만들어 내며 진화할 날을 기대한다.

<위 글은 경상일보 2015년 9월 18일(금)자 1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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